“제왕적 대통령제 폐해 고칠 국정운영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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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동 前총리 ‘정치는 중업이다’ 회고록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를 스스로 고쳐 나가는 국정운영을 하는 것이 대통령직 성패의 열쇠다.”

이한동 전 국무총리(84·사진)가 최근 회고록 ‘정치는 중업(重業)이다’(승연사)를 내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렇게 제언했다. 이 전 총리는 회고록에서 “말 한마디에 원전 건설이 중단되는 대통령의 권한 행사는 초헌법적 발상”이라며 “향후 개헌의 시대정신은 분권이라는 국민적 합의가 형성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 전 총리는 판검사를 거쳐 1981년 정계에 입문한 이후 6선 의원을 하는 동안 민주정의당 사무총장과 원내총무, 자유민주연합 총재 등을 역임했다. 1987년 여야 개헌 협상을 주도했고 김대중(DJ) 정부에서 2년 2개월 동안 국무총리를 지냈다. 좌우명인 ‘해불양수(海不讓水·바다는 어떤 물도 사양하지 않는다)’처럼 산업화-민주화 세력과 손잡고 통합의 정치에 힘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전 총리는 회고록에서 1987년 민주화 요구가 커질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 지시를 반대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전 전 대통령은 원내 몸싸움을 막기 위해 공권력 투입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국회법을 개정하라고 당시 여당인 민정당에 지시했다. 민정당 원내총무였던 이 전 총리는 대통령과 독대한 자리에서 “여권이 야당을 탄압하고 국회를 장악한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며 반대했고 결국 국회법 개정 추진은 철회됐다.

1987년 개헌에서 헌법재판소 신설은 야당이 아닌 당시 여권의 아이디어였다는 증언도 남겼다. 이 전 총리는 “헌재가 당시 야당의 요구로 신설됐다고 언론에 알려졌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당시 여당이던 민주정의당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작품이었다”고 썼다.

훗날 대통령과 총리 사이로 만난 DJ와 역사적인 현장에서 처음 대면한 일화도 그려졌다. 1973년 8월 일본 도쿄에서 납치돼 서울 자택에 연금된 DJ를 우시로쿠 도라오 주한 일본대사가 면담할 때 공안부 검사였던 이 전 총리가 배석한 것. 그런데 나중에 대통령이 된 DJ에게 그때를 언급하자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한다. 이 전 총리는 “납치 사건 때 DJ의 정신적 충격이 너무도 심각했음을 짐작하게 한다”고 회고했다.

김종필(JP) 전 총리와의 인연도 적었다. 2001년 DJP 공동정부가 깨지면서 자민련 명예총재였던 JP가 이 전 총리에게 총리직 사퇴를 요구했지만 이를 거부한 결정도 담담히 회고했다. 이 전 총리는 ‘정치는 허업(虛業)’이라고 했던 JP와 미묘하게 대비되는 제목을 단 데 대해 “지난 세월을 반추해 보고 얻은 최고의 깨달음은 ‘정치는 중업’이라는 사실이다. 정치는 국사를 조직하고 이끄는 최고의 업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이한동#제왕적 대통령제#정치는 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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