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고려 목은 이색 시에서 비롯됐다”…17대 손녀 추적

  • 뉴시스
  • 입력 2018년 10월 1일 06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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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제6회 아리랑의 날’을 목은(牧隱) 이색(1328~1396)의 17대 손녀 이영희(70) 여사가 기념한다. 아리랑 전승자가 아닌 인물이 이날을 기리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 여사는 올해 아리랑의날을 맞이해 아리랑 관련자료를 공개하는 동시에 유적지 헌화활동도 계속하고 있다.

아리랑의 시원설 중에는 고려 유신(遺臣)들의 시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있다. 고려가 망한 후 조선 태조 이성계(1335∼1408)의 눈을 피해 숨어 살던 고려 신하들이 고려왕조를 회고하는 시에서 비롯됐다는 설이다.

이색은 이 유신들 중 하나다. 여주 지역에 은거한 이색, 치악산에 은거한 원천석(1330~?), 정선에 은거한 정선전씨 중시조 전오륜(?~?)을 비롯한 6인이 고려왕조를 회고하는 시회를 열었는데, 이 때 지은 시가 지역민들의 공감 속에 노랫말이 됐다는 얘기다.

‘정선아리랑’의 대표사설인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가 바로 이 시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이다.

이색의 한시가 풀이돼 두 수의 가사가 됐다는 전언도 있다. ‘창밖은 삼경인데 보슬비는 오고요/ 우리 둘의 먹은 마음 두사람만 안다// 새 정분에 날이 밝아 흡족치 않아요/ 옷소매 부여잡고 다시 올 날 또 묻네/ 아리랑 아리랑 아리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다.

아리랑의날을 제정한 한겨레아리랑연합회 등은 “이 두 가사는 정선군 발행 ‘정선아리랑 가사집’은 물론, 명창 김순녀가 취입한 음반 ‘3대가 부르는 정선아라리’(2003)에도 수록됐다”고 확인했다.

이 여사는 최근 이색의 대표작인 오언율시 ‘영명사를 지나며’(昨過永明寺)에 등장하는 영명사 사진 2장도 발굴했다. 1930년대 말 촬영한 것으로 추정하는 흑백과 채색 사진이다.

영명사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지은 아홉 절 가운데 하나다. 조선시대 선교양종 36본사에 들 정도의 대찰이었다. 하지만 6·25동란 때 불타버린 것으로 전해진다.

이 여사가 공개한 영명사 사진은 대웅전 측면에서 찍은 컬러 1장, 영명사에서 부벽루까지 조망한 흑백 1장이다. 근접 촬영한 사진으로 영명사 전체를 알 수 있고 상태가 양호해 가치가 있다. 영명사 관련사진은 청일전쟁 직전 일본군의 종군사진사가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원경, 6·25 이전 찍은 몇 장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여사는 또 경기 성남 수성구 청계산 기슭에서 이색이 ‘청룡(계)산’이란 시를 짓기 위해 머문 흔적을 확인, 이곳에 꽃을 바쳤다.

이색의 친필 유묵을 추적 중이기도 하다. 고려시대 인물의 친필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 여사는 “고서 전문가로부터 10여년 전 친필 간찰(편지)이 모처에 납품됐다는 소문을 듣고 행적을 찾고 있다”고 했다. 인천 한국근대문학관을 비롯한 경기 지역 박물관에 유물 등록 여부를 문의한 상황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선조의 시가 정선아리랑으로 불린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선조의 생애를 구체적으로 알게 해 주는 것은 문집 외에는 별로 없다는 사실에 후손된 도리로 자료를 발굴하고 유적지를 찾아 기록을 남기는 일을 할 필요가 있음을 알게 됐다.”

한편 한겨레아리랑연합회 등은 2013년 10월1일 아리랑의날을 제정, 선포했다. 영화 ‘아리랑’ 개봉일로 주제곡 ‘아리랑’이 공개된 날(1926)이다. ‘아리랑 정신의 세계 보편화’, ‘인류무형문화유산 가치 세계화’ ‘남북 문화교류의 견인’ ‘자립적 전승주체인 커뮤니티의 활성화’ 등이 목표다.

한겨레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상임이사는 “아리랑의날을 통해 지속가능하고 미래적인 민족문화운동을 실천하고자 한다. 누가 부르는가와 어떤 아리랑인가보다 왜 부르는가가 더 중요함을 실증하는 연구와 공연을 통해 모두가 함께하고, 나아가 아리랑정신을 세계 보편정신으로 확산시켜 미래적 지향 가치를 구현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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