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항쟁 목격하고 한국에 대한 인식 근본적으로 바뀌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동아시아 소농사회론’ 석학 미야지마 히로시 성균관대 교수 고별강연

‘동아시아 소농사회론’을 제창한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는 최근 성균관대 고별 강연에서 “근래 동아시아는 소농사회의 형성 이후 가장 거대한 변화를 겪는 듯싶다”며 “난 패러다임 붕괴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의 경계에 서서 여러 학문적 길을 모색한 과도기의 연구자”라고 말했다.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제공
‘동아시아 소농사회론’을 제창한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는 최근 성균관대 고별 강연에서 “근래 동아시아는 소농사회의 형성 이후 가장 거대한 변화를 겪는 듯싶다”며 “난 패러다임 붕괴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의 경계에 서서 여러 학문적 길을 모색한 과도기의 연구자”라고 말했다.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제공

일본 도쿄대 교수로 조선 경제사를 연구하다가, 내정된 동양문화연구소장직마저 고사하고 역사학자로서 큰 업적을 남길 수 있는 완숙한 시기를 한국의 대학에서 보낸 학자가 있다.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석좌초빙교수에서 지난달 퇴임한 미야지마 히로시(宮嶋博史·70) 교수다. 그가 2002년부터 16년간 일한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에서 최근 고별강연을 했다.

“내 연구의 최종 목표는 한국사를 통해 역사 전체, 세계사를 바라보는 일을 풍부히 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미야지마 교수는 강연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했다. 얼핏 당연한 말 같지만 그 함의는 가볍지 않다. 한국의 역사학계는 식민사학의 타율성론과 정체성론을 극복하기 위해, 한국사가 세계사의 발전법칙에 따라 내재적으로 발전해왔다고 설명했지만 근래 들어 서구 중심주의에 갇혔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러나 미야지마 교수는 역으로 한국사를 통해 세계사를 보려 했다는 것이다.

그는 일제의 토지조사사업, 조선 농업기술사, 유학사상에 관해 연구했고 이 연구들은 1994년 ‘동아시아 소농사회의 형성’이라는 논문을 통해 ‘동아시아 소농사회론’으로 집약됐다. 중국에서는 15세기, 한국과 일본에서는 17세기에 집약적 논농사 기술이 확립됐다. 그 경영 주체로 소농층이 형성됐으며 지배층이 농업 경영에서 손을 떼고 성리학에 바탕을 둔 관료로서 국가 운영에 전념하는 사회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 소농사회의 형성이 동아시아에서는 19세기의 근대화보다 더 근본적인 분기점이라는 주장이다.

그의 연구는 유럽 중심주의에서 탈피하는 동시에 한국사를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파악하면서 일본사, 중국사를 아우르는 독특한 방법론을 제시했다.

그는 소련 등 사회주의권의 붕괴와 함께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을 한국에서 목격한 것이 연구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고 말했다.

“1987년에 3월부터 일곱 달 동안 서울대에 있으면서 학생들이 매일같이 데모하는 것을 봤어요. 한국사회와 한국인에 대한 내 인식이 근본적으로 잘못됐다 싶었습니다. ‘이 역동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시작됐지요.”

그는 “역사 연구는 현실과의 대화”라고 강조했다. 한국의 민주화와 경제 발전을 역사적으로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급격히 부상한 중국을 역사적으로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등에 대한 고민과 역사 연구를 떼어놓을 수 없다는 뜻이다.

다른 한편 그의 연구는 아시아에서 유럽과 같은 봉건제를 경험한 것은 일본뿐이며, 일본만 독자적으로 서구처럼 근대화를 이루고 중국과 한국은 그러지 못한 것이 당연하다는 일본의 역사 인식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그는 “이 같은 일본의 역사 인식을 새롭게 바꿔야 한다는 것이 내 연구 목표였지만 얼마나 성공했는지는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일본의 한국에 대한 인식은 일본 정체성의 근간과 관계돼 있습니다. 한국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평가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보지도 않으면서 ‘한국은 이런 나라다’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일본도 이제 어느 방향으로 갈지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역사인식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동아시아 소농사회론#6월 민주화운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