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단색화 외길… 색깔있는 회화세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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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지 화백 4월 14일까지 개인전
“그림 그리며 자존심 지켜 행복”

이정지 화백의 1980년대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88’. 182×227cm. 선화랑 제공
이정지 화백의 1980년대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88’. 182×227cm. 선화랑 제공
“성공도 명성도 바란 적이 없습니다. 평생 그림을 그리며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으니 그보다 행복한 일이 없지요. 이번 전시 역시 꾸준히 ‘나의 길’을 가던 당시의 숨결이 그대로 담겨있습니다.”

단색화가 이정지 화백(77). 웬만큼 그림을 아는 이들에게도 낯선 이름일 수 있다. 단색화로 인기를 끌었던 박서보 하종현 서승원 등 남성 단색화가에 비해 주목도가 낮았다. 하지만 국내 여성작가로는 유일하게 40년 이상 단색화 외길을 걸어온 그는 최소한 지금보다는 더 큰 상찬을 받아 마땅한 예술가다.

최근 열린 개인전 ‘이정지: 80년대 단색조회화(單色調繪畵)를 중심으로’는 그런 그의 품격을 엿볼 수 있는 자리다. 1980년대 “엄격하게 신체를 활용해 바르고 긁기를 반복한” 작품 30여 점은 형언하기 힘든 묵직함이 가득하다. 이 화백은 “40대 왕성하던 시절 캔버스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데 집중했다”며 “얼핏 닮아 보이지만 어느 하나도 동어반복인 작품이 없다. 우주적이면서도 인간적인, 깊이와 인생관을 담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굳이 ‘단색조회화’라 부르는 이유도 설명했다. “서양 단색화와는 전제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지요. 1970년대 화단을 지배한 모노크롬의 극성기에 작품 활동에 합류하긴 했지만, 그 집단성에서 벗어나길 바랐습니다. 예를 들어 제 작품을 단색, 하나의 색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누리끼리하거나 거무스름하죠. 이건 서양의 잣대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에요. 한국적인 정서를 표현한 거예요.”

해외에서 더 큰 평가를 받아온 그는 당시 작품을 선보였던 일본 개인전에서는 “기량이 완숙의 경지에 이르렀으며, 한국 모더니즘 계승의 중심 주자에 속해 있음을 증명했다”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이 화백은 “60년 가까이 주위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작품에 매진했다”며 “화가는 한 사람이라도 알아봐주는 이가 있다면 만족하며 그림을 그릴 수 있다. 그런 뜻에서 난 인복 많고 축복 받은 화가”라고 말했다.

다음 달 14일까지. 서울 종로구 선화랑. 02-734-0458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이정지 화백#80년대 단색조회화를 중심으로#단색조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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