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 잃지 말라고 박수근 선생께서 어깨 툭 쳐주신 기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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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박수근미술상 수상한 이재삼 작가

이재삼 작가는 자신의 작품 방향을 “채움과 비움의 미학의 공존”이라고 설명했다. 달빛을 받은 나무의 모습을 담는 게 채워가는 작업이라면, 폭포나 물안개는 오히려 여백을 비워둠으로써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적 동양적 세계관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양평=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이재삼 작가는 자신의 작품 방향을 “채움과 비움의 미학의 공존”이라고 설명했다. 달빛을 받은 나무의 모습을 담는 게 채워가는 작업이라면, 폭포나 물안개는 오히려 여백을 비워둠으로써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적 동양적 세계관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양평=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굳이 정의하자면, 전 ‘달빛을 그리는 화가’입니다. 태양 아래 사물을 조명하는 게 서구 미술이라면, 달빛은 한국적이고 동양적인 감성을 드러냅니다. 동아시아에서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관조의 문화를 지녔죠. 눈이 아니라 육감으로 느끼는 빛이라고나 할까요.”

지난달 27일 경기 양평군 작업실에서 만난 이재삼 작가(58)는 예상과는 다른 미술가였다. 1990년대부터 목탄화에 천착해 왔기에 묵직한 분위기일 줄 알았건만. 편안한 후드티를 입은 모습은 활기찬 청년에 가까웠다. 마침 작업실 앞뜰을 뛰노는 산토끼 한 마리를 함께 지켜보고 있자니, 그 차갑던 겨울이 떠나가는 느낌이랄까. 이 작가 역시 “스티브 잡스의 ‘항상 열망하라, 항상 무모하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며 “여전히 공부하는 자세로 초심을 잃지 않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제3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을 축하드린다.

“고마운 일이지만, 더 옷깃을 여미고 겸손해지고 싶다. 그래도 한눈팔지 않고 창작에 매진했다고 격려받은 것 같다. 박수근 선생께서 ‘앞으로도 잘 버텨라’ 하시며 어깨를 툭 쳐주신 기분이랄까. 스스로를 돌아보며 ‘마음 바빠지지 말자’라고 여러 번 되뇌었다.”

―끝없이 정진하는 수도자 말투로 들린다.

“하하, 닮은 점이 있다. 예술가 역시 흐름에 휩쓸리지 말고, ‘열매’를 맺는 세월을 견뎌야 한다. 화가라고 왜 돈이 궁하지 않겠나. 대중 취향을 따라가고픈 유혹도 생긴다. 하지만 결국 답은 내 안에 있다. 지금껏 무엇을 향해 걸어왔는지 돌아보면 갈 길도 보인다. 자기만의 방식을 찾고 지키는 게 중요하다.”

―‘목탄화가’란 스타일을 30년 넘게 지켜왔다.

“기왕이면 ‘숯의 화가’라고 불러주면 좋겠다. 서양 드로잉에 쓰는 목탄화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숯(목탄)은 흑연과 먹 등 다양한 재료를 연구해 다다른 결과물이었다. 자연 안료인 송진과 아교 등도 함께 쓰는데 자세한 건 기밀이다. 숯은 ‘나무를 태워서 숲을 환생시킨 영혼’ 아닌가. 일종의 환원적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나무나 폭포, 물안개 등을 주로 그리는 이유와 이어지나.

“그렇다. 난 ‘달빛’에 비친 풍광화(風光畵)를 그리는 사람이다. 햇빛의 시각적 명료함이나 원근감을 쫓지 않는다. 달빛이 품은 빛의 덩어리를 담는다. 동양화 서양화란 구분 자체가 무의미하지만, 한국인 정체성이 새겨진 DNA를 표현하는 방식이다.”

―서양화 전공인데 전혀 다른 세계관을 펼친다.

“쉽지 않았다. 30대 중반에 큰 변화를 겪었다. 이전까진 ‘그냥저냥’ 서구적 설치미술을 주로 했다. 하지만 내 옷이 아니었다. 불편하고 고통스러웠다. 이전 활동을 모두 접고 3년 이상 칩거하며 연구했다. 국수주의는 싫지만, 난 ‘한국 사람’이다.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하나 더, 책 읽고 설명해야 하는 미술이 싫었다. 보면 딱 아는 그림을 그리려 했다. 삶의 근원이란 그런 거 아니겠나.”

―요즘 문화계는 물론 세상이 ‘미투 운동’으로 시끄럽다.

“누구에게 훈수 두는 성향이 아니라 조심스럽다. 다만 나무는 수백 년을 사는데, 인간은 겨우 100년 남짓 머물다 간다. 헛된 일로 그 짧은 시간을 망치지 않길 바란다. 작가는 이성과 감정의 밸런스가 중요하다. 현실에 발 담고 있되, 자신의 영역에 몰입해야 한다. 돈과 욕망을 좇는다면 예술보다 쉬운 길이 훨씬 많다.”



양평=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이재삼 작가#박수근미술상#목탄화가#숯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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