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유로존의 위기, 연대 없는 통합이 부른 비극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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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조지프 스티글리츠 지음/박형준 옮김/552쪽·2만5000원·열린책들

지난해 7월 영국 런던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결정에 대한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 저자는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EU 개혁의 수익과 비용에 대한 판단을 묻는 질문이었고, 영국인의 다수가 그 수익에 의문을 제기했다”고 썼다. 동아일보DB
지난해 7월 영국 런던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결정에 대한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 저자는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EU 개혁의 수익과 비용에 대한 판단을 묻는 질문이었고, 영국인의 다수가 그 수익에 의문을 제기했다”고 썼다. 동아일보DB
“경제 시스템의 작동 원리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그것을 만지작거리는 건 위험하다. 경제 과학에 앞서 이념이나 이해관계에 영향을 받아 형성된 ‘의심스러운 경제 교리’가 의제를 추동하게 되면, 잘 계획한 경제 통합 노력조차 역효과를 낸다.”

이 책은 유로 단일 통화 프로젝트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통해 서문에 쓴 이 지적을 차분히 실증한다. ‘소수의 이익을 위해 세계화를 활용하려 고안된 계획들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는’ 모든 나라에 적용되는 지적이다. 유럽연합(EU) 바깥의 독자도 새겨 둘 만한 경고다.

저자는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국제관계학 교수다. 1990년대 빌 클린턴 정부에서 세계은행 수석부총재를 지냈다. 하지만 “세계은행이 후진국 빈곤을 심화시키고, 국제통화기금(IMF)이 원조하는 나라에 유리한 정책을 원조 대상국에 강제한다”고 비판하다가 자리에서 물러났다. 정보 불균형의 해소 방안에 관한 연구로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금융위기에 빠진 나라에 재정 긴축과 고금리 정책을 강요한 IMF에 대한 그의 비판은 이번 책에도 같은 흐름으로 이어진다. 적용 모델이 유로존으로 바뀌었을 따름이다. 그는 “유로화가 약한 국가를 더 약하게 만들고 강한 국가를 더 강하게 만들어 불평등을 심화시켰다”고 썼다.

“시급한 개혁 대상은 개별 국가가 아니라 유로존 자체의 구조 안에서 찾아야 한다. 독일 등 유로존을 주도하는 국가들은 피해자들에게 침체의 책임을 물으려 했다. 결함 있는 정책과 하자 있는 유로존 구조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나라들에 위기의 책임을 돌렸다.”

유로존은 1992년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 조약의 단일통화 채택 결정으로 형성됐다. 2002년부터 EU 28개 회원국 중 19개 나라가 유로 공동 화폐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보다 3년 전 유로존 국가들은 자국 통화를 서로의 통화 가치에 상대적으로 고정시켰다. 저자는 이렇게 야기된 ‘경직성’을 유로존 장기 침체의 주된 원인으로 짚었다.

“그리스가 유로에 묶여 있지 않았다면 경제 위기가 닥쳤을 때 자신의 통화를 평가 절하할 수 있었을 것이다. 휴가 갈 곳을 정하려는 여행객들은 ‘그리스가 엄청 싸졌다’는 걸 알고 그곳으로 몰려들었을 거다. 그런 현상은 그리스의 소득 증가와 빠른 회복에 도움이 됐을 것이다. 그리스 중앙은행은 재빨리 이자율을 낮춰 경기 부양을 시도할 수 있었을 거다.”

책이 지적하는 유로존 오류의 요지는 단일 통화를 작동시킬 제도적 장치를 갖추지 못한 채 결함투성이 통화 체계를 서둘러 실행한 데 있다. 고정 환율제가 장기 불황의 원인이 된다는 건 19세기 말 미국 금(金)본위제의 실패로 확인된 사실이다. 저자는 “유권자 손에서 벗어난 정치 지도자들이 어떻게 시민의 이익에 복무하지 않는 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는지 보여준 것이 유로존의 교훈”이라고 했다.

“최소한의 위험 공유 없이는 어떤 통화 공동체도 작동할 수 없다. 정치 통합을 앞서간 경제 통합은 실패하는 게 당연하다. 충분한 정치적 통합이 이루어진 공동체에서는 경제적 승자가 획득한 수혜 일부를 패자에게 이전할 수 있다. 그렇게 장기적으로 공동체 전체가 더 발전하게 된다. 충분한 연대가 부재한 통합은 통합 이전보다 심각한 빈곤을 초래한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유로#조지프 스티글리츠#박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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