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매거진]세이코, 스위스 시계를 넘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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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슈 워치 스튜디오 내 고급무브먼트 조립을 담당하는‘다쿠미 스튜디오’의 모습.엔지니어들이 무브먼트를 케이스와 조립하는 데 한창이다.
신슈 워치 스튜디오 내 고급무브먼트 조립을 담당하는‘다쿠미 스튜디오’의 모습.엔지니어들이 무브먼트를 케이스와 조립하는 데 한창이다.
일본 도쿄(東京) 신주쿠(新宿)역에서 2시간가량 기차를 타고 가면 나가노(長野)현 마쓰모토(松本)시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남쪽을 향해 버스로 20여 분을 달린 뒤에야 ‘소금의 끝’라는 뜻의 시오지리(염尻)시에 도달할 수 있다. 오래전 소금장수가 내륙인 이곳에 오면 소금이 다 떨어졌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란다. 한적한 이곳에 세이코엡손주식회사 시오지리사업소인 ‘신슈(信州) 워치 스튜디오’가 있다.

세이코가 전 세계 매체들을 초청해 주요 생산시설을 공개한 ‘세이코 미디어 익스피리언스 2017’ 프로그램에 국내 매체로는 유일하게 동아일보가 다녀왔다.



쿼츠와 스프링 드라이브의 산실


한 엔지니어가 그랜드세이코의 ‘쿼츠 캘리버9F’ 무브먼트를 조립하고 있다. 캘리버9F는 연간 오차가 -10∼+10초로 높은 정확도를 보인다.
한 엔지니어가 그랜드세이코의 ‘쿼츠 캘리버9F’ 무브먼트를 조립하고 있다. 캘리버9F는 연간 오차가 -10∼+10초로 높은 정확도를 보인다.
1881년 핫토리 긴타로가 창업한 세이코는 1969년 세계 최초로 쿼츠 시계인 ‘아스트론’을 만들며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쿼츠란 수정의 압전(壓電)현상을 이용해 진동을 일으켜 움직이는 시계를 뜻한다. 태엽이 감겼다 풀리며 움직이는 기계식 시계는 1960년대만 하더라도 하루 15∼60초 수준의 오차를 갖고 있었다. 쿼츠는 이 오차를 한 달 15초 수준으로 줄였다. 이런 정확도에 상대적으로 가격을 낮추면서 세이코는 스위스 시계와 필적할 정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신슈 워치 스튜디오에서는 쿼츠뿐 아니라 세이코가 직접 개발한 ‘스프링 드라이브’의 무브먼트(시계 작동 장치)를 제작하고 있다. 부품의 제작, 조립 조정까지 모든 공정이 이곳에서 한번에 이뤄진다.

스프링 드라이브는 기계식 시계처럼 메인 스프링에 의해 구동되면서도 쿼츠 시계만큼 정확성을 높인 시계다. 1977년 요시카즈 아카하네라는 엔지니어가 연구개발을 시작해 28년이 흐른 2005년에야 첫선을 보였다. 이른바 ‘영원 불변의 시계(Everlasting watch)’다. 스프링 드라이브는 감겼다 풀리는 힘으로 기계식 시계를 움직이는 메인 스프링을 더욱 얇고 길게 만들었다. 동력과 정확성을 함께 높였다. 그 덕에 72시간이라는 긴 파워리저브(임계시간)를 자랑한다.

세이코가 자체 개발한 시계 ‘스프링 드라이브’의 SBGA211 모델.
세이코가 자체 개발한 시계 ‘스프링 드라이브’의 SBGA211 모델.
푸른색의 방진복으로 갈아입고 간 첫 번째 장소는 다쿠미(匠)스튜디오. 다쿠미는 일본어로 장인이란 의미다. 한 여성 직원이 스프링 드라이브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인 ‘캘리버 9R86’을 조립 중이었다.

이 직원은 깨알같이 작은 크기의 부품을 꺼내 무브먼트를 일일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며 조립하고 있었다. 책상 앞에 놓인 무브먼트는 5개. 스프링 드라이브 크로노그래프의 무브먼트는 400개가 넘는 부품이 들어간다. 복잡도가 높아 일일이 정밀하게 세팅해야 하는 작업다. 생산하는 제품이 많지 않은 까닭이다.

시계 생산은 철저히 분업화돼 있었다. 조립된 무브먼트는 다른 장소로 옮겨져 케이스, 케이스백과 합쳐졌다. 다른 한쪽에서는 시침, 분침, 초침을 다이얼과 수평으로 맞추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다이얼 위에 붓으로 파란색 인덱스를 정확하게 그려 넣는 직원의 모습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바로 옆에서는 시계 검수가 한창이었다. 스트랩을 장착하지 않은 시계를 물속에 넣어 내부가 뿌옇게 되는지, 혹은 기압을 높여도 견뎌내는지 등을 테스트한다. 여기서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으면 스트랩을 장착하는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다쿠미 스튜디오의 한 엔지니어가 현미경을 통해 미세한 부품을 조립하고 있다.세이코 제공·시오지리=박은서 기자 clue@donga.com
다쿠미 스튜디오의 한 엔지니어가 현미경을 통해 미세한 부품을 조립하고 있다.세이코 제공·시오지리=박은서 기자 clue@donga.com


외관을 아름답게 하는 ‘폴리싱’ 기술들

정확성도 중요하지만 아름다운 외관이 결국 시계의 품격을 좌우한다. 케이스 폴리싱(Polishing) 공정은 외관의 아름다움을 책임지는 과정이다. 세이코 상위 브랜드인 그랜드 세이코 제품의 폴리싱 공정을 보던 중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그랜드 세이코에 명성을 가져다준 ‘자라쓰(ザラツ) 폴리싱’이었다.

자라쓰 폴리싱은 H자 형태를 닮은 케이스의 측면 부분을 빠르게 돌아가는 주석판 위에 문지르는 작업이다. 특정 각도로 케이스를 문질러야 하는 정밀 기술인 만큼 20년 이상 경력을 가진 장인들만이 담당할 수 있다. 자라쓰 폴리싱을 마치고 나면 그 면은 평평하고 거울처럼 빛나는 표면으로 바뀐다. 투어를 동행한 이마이 히로카즈 씨는 “더욱 날카로워 보이기 위한 처리”라고 설명했다.

‘실크 선레이(Silk Sun-Ray) 다이얼’ 제작 과정도 흥미로웠다.
투박했던 금속판(왼쪽)이 장인의 손을 거치면 태양빛이 퍼지는 듯이 빛나는 실크 선레이 다이얼로 바뀐다.
투박했던 금속판(왼쪽)이 장인의 손을 거치면 태양빛이 퍼지는 듯이 빛나는 실크 선레이 다이얼로 바뀐다.
일반적인 금속판을 깎고 문질러 동그란 다이얼이 중심에서부터 사방으로 태양빛이 퍼지는 것처럼 반짝거리도록 만드는 공정이다. 선레이 패턴은 솔(브러시)이 끝에 달린 원판에 다이얼을 대고 문질러 만들어진다. 이 과정도 일일이 수작업을 거쳐 이뤄진다. 폴리싱을 마치고 나면 투박했던 은색 다이얼이 한층 더 고급스럽게 변신한다.

시오지리=박은서 기자 clue@donga.com
#세이코#스위스 시계#세이코 미디어 익스피리언스 2017#폴리싱#자라쓰 폴리싱#실크 선레이 다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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