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0년전 남한산성… 칼날위의 두 忠臣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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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10월 3일 개봉 영화 ‘남한산성’

‘명분보다는 당장의 삶이 더 중요하다’는 주화파 최명길(이병헌·왼쪽)과 ‘신념을 지키지 못하는 삶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며 맞서는 척화파 김상헌(김윤석). 요즘 영화들에서 느낄 수 있는 짜릿한 카타르시스도, 기가 막힌 반전도 없지만 영화는 여운을 남긴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명분보다는 당장의 삶이 더 중요하다’는 주화파 최명길(이병헌·왼쪽)과 ‘신념을 지키지 못하는 삶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며 맞서는 척화파 김상헌(김윤석). 요즘 영화들에서 느낄 수 있는 짜릿한 카타르시스도, 기가 막힌 반전도 없지만 영화는 여운을 남긴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1636년 병자년, 그해 조선의 겨울은 유난히 깊었다.

다음 달 3일 개봉하는 영화 ‘남한산성’은 조선에 군신관계를 요구하는 청의 대군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인조와 신하, 백성들이 고립무원 속에서 혹독한 겨울을 났던 47일간의 역사를 스크린에 옮겼다. 70만 부 이상 팔린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역사는 조선의 왕이 치욕적으로 청 태종에게 패배를 인정하며 머리를 숙여 절을 한 것으로 그해를 기록한다. 영화는 그 어려운 시기를 이조판서인 주화파 최명길(이병헌)과 예조판서로 척화파인 김상헌(김윤석), 두 충신의 대립구도로 펼쳐나간다.

소설이 담백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문체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조선의 상황을 담아냈듯, 영화도 깊이 있고 속도감 있는 대사가 돋보인다. 150억 원이 투입된 대작이지만 오히려 많은 제작비를 쏟아부은 청과 조선의 대규모 전투 장면보다도 좁고 추운 궐 안에서 두 사람이 마치 탁구를 치듯 주고받는 ‘말의 전투’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연출은 마치 연극을 보는 듯하다. 두 사람은 왕을 앞에 두고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다. 만백성과 함께 죽음을 각오하지 말라”(최명길)거나 “한 나라의 군왕이 오랑캐에 맞서 떳떳한 죽음을 맞을지언정 어찌 만백성이 보는 앞에서 치욕스러운 삶을 구걸하려 하는가”(김상헌)라는 각자의 신념을 담은 날카로운 말을 주고받는다.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마음은 같지만 단지 방법과 신념이 달라 치열하게 맞섰던 과거의 두 인물은 이병헌과 김윤석 두 배우의 연기를 통해 지금 스크린에서 살아 숨쉰다.

그간 사극 영화는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가미하는 ‘팩션’이 대세였지만, 이 영화는 실존인물과 시대상을 고증을 통해 충실하게 재현해낸 정통 사극이라는 점에서도 눈에 띈다.

이들 외에도 출연 배우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청과의 화친으로 생존을 모색하자는 최명길과 죽음을 불사하고라도 맞서 싸워야 한다는 김상헌의 상반된 주장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조선의 16대 왕 인조 역은 박해일, 천한 신분이지만 지혜롭고 의로운 성품의 인물인 대장장이 서날쇠 역은 고수가 연기했다. 절대적인 열세 속 남한산성을 지키는 수어사 이시백 역은 박희순이 맡았다.

영화는 시종일관 진지하다. 이 때문에 남성적 색채 짙은 정통 사극에 취향이 없는 관객이라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사극에서 곧잘 등장하는 익살스럽고 코믹한 캐릭터가 없다시피 하다. 과장된 캐릭터를 최대한 배제하고 당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전달할 뿐이다.

명의 쇠퇴와 청으로 이름을 바꾼 후금의 번성, 이어지는 청의 무리한 군신관계 요구까지 두 권력 사이에서 오갈 데 없는 상황은 지금 우리의 상황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잖다.

영화 ‘도가니’ ‘수상한 그녀’ 등을 연출한 황동혁 감독은 시사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380년 전 역사와 현재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며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통해 과거를 되새기면서 현재를 돌아보고 고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연출 의도를 설명했다.

활자를 영상으로 구현하기 위한 감독의 노력도 눈에 띈다. 고립무원의 남한산성을 생생하게 담기 위해 11월부터 5개월간 강원 평창에 세트를 지어 창호지가 흔들릴 정도의 바람, 하얀 입김까지 그대로 담았다. ‘마지막 황제’를 통해 동양인 최초로 골든글로브와 아카데미 작곡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음악감독 사카모토 류이치가 최초로 한국 영화에 참여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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