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마을] 아부지, 그 두꺼비 잡지 마오…은혜 갚은 아기 뱀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8월 17일 05시 45분


고즈넉한 풍경의 고흥군 점암면 안치마을은 서로를 구한 뱀과 두꺼비의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안치마을 뒷산 능선은 뱀의 형상을 닮아있다. 고흥(전남)|김종원 기자 won@donga.com
고즈넉한 풍경의 고흥군 점암면 안치마을은 서로를 구한 뱀과 두꺼비의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안치마을 뒷산 능선은 뱀의 형상을 닮아있다. 고흥(전남)|김종원 기자 won@donga.com
7. 점암면 안치마을 ‘두꺼비와 아기 뱀’

아픈 엄마 약초 구하다 바위 틈에 낀 아기 뱀
지나가던 두꺼비, 원한도 잊고 목숨 구해줘

아기 뱀 간절한 애원에 마침내 하늘도 감동
뱀 머리 능선…일제 때 정기 없앤다고 훼손


오랜 세월 척박했던 땅. 그만큼 사람들의 세상살이에 대한 의지는 강했다. 강하고 질긴 태도와 능력으로써만 세상은 살아지는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 이야기는 쌓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신산한 삶을 이어가면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밝고 슬프고 아름답고 비극적이어서 더욱 깊은 울림을 주는 이야기. 설화는 그렇게 오래도록 쌓여 전해져오고 있다. 전남 고흥군을 다시 찾는 이유다. 지난해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고흥의 이곳저곳 땅을 밟으며 다양한 이들을 만난 스포츠동아는 올해에도 그곳으로 간다. 사람들이 전하는 오랜 삶의 또렷한 흔적을 확인해가며 그 깊은 울림을 함께 나누려 한다. 매달 두 차례 독자 여러분을 찾아간다.

고흥군 점암면 안치리의 안치마을은 농기계 소리와 가축들의 소리로 주민의 숨소리를 느낄 수 있다. 이마저도 없다면, ‘고즈넉하다’는 말 외에 딱히 어울리는 표현이 없을 정도로 고요하다. 아마도 마을 뒤를 둘러싸고 있는 산의 영향이지 않을까. 멀리서 보이는 마을뒷산의 능선은 끊어짐 없이 길게 늘어져 있다. 마치 뱀이 소리 내지 않고 조심스럽게 기어가는 듯 하나로 연결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뱀 모양의 산이 마을을 지키고 있어서인지, 이곳에서 뱀은 기피 동물로 생각하지 않았다. 뱀이 출몰한 장소를 명당으로 여길 만큼 소중한 존재로 받아들인다. 안치마을에서 전해져오는 ‘서로를 구한 아기 뱀과 두꺼비’의 설화가 이를 잘 설명해준다.

고흥(전남)|김종원 기자 won@donga.com
고흥(전남)|김종원 기자 won@donga.com

● 두꺼비를 향한 아기 뱀의 은혜

아기 뱀은 안치마을 뒷산을 오가다 바위틈에 몸통이 끼고 만다. 마침 지나가는 두꺼비에게 살려달라고 도움을 청한다. 하지만 두꺼비는 자신의 동생이 뱀에게 잡아먹힌 사실이 떠올라 뱀을 무섭게 노려보며 다가간다.

이 모습에 뱀은 자신을 구해주러 오는 줄 알고 “고마워요. 이 은혜는 잊지 않겠어요”라고 말한다. 뱀의 애절한 눈빛에 두꺼비는 순간 멈칫한다. 아픈 엄마를 위해 약초를 찾다 봉변을 당한 어린 뱀을 내버려두지 못하고 결국 구해준다. 뱀은 “부디 행복하시고 자손 대대로 복을 누리세요”라고 감사함을 표한다.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아기 뱀은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듣는다. 엄마를 낫게 하는 방법은 오직 두꺼비를 먹어야 한다는 것. 방금 전의 두꺼비를 잡으러 가야겠다는 아빠 뱀의 말에 아기 뱀은 “그 두꺼비만은 잡지 마세요. 저를 구해준 두꺼비를 살려주세요”라고 애원하며 눈물을 흘린다.

아기 뱀의 간절함이 통한 걸까. 두꺼비가 앉아있던 바위 앞까지 물이 차올라 아빠 뱀은 건너가지 못했다. 아기 뱀은 미소를 지으며 오랫동안 뒷산에 앉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 설화의 존재를 알고부터 마을 주민들은 산 능선이 시작되는 점을 뱀의 머리 부분이라 보고 좋은 기운이 산 전체로 퍼져간다 믿으며 살고 있다.


● 마을 깊숙이까지 무력을 휘두른 일본

그러나 안타깝게도 뱀의 머리 부분이라 여기는 부분은 현재 사라지고 없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정기를 없애기 위해 뱀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을 훼손했다고 한다. 흔적이 없기에 눈으로 확인할 수 없어 주민들에게 산은 그저 ‘뒷산’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안치마을 이장 김판태(76) 씨는 “마을에서는 산의 가장 낮은 지점을, 설화처럼 뱀이 바위에 끼어 머리를 쳐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 부근을 중심으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있고 앞으로는 바다가 있어 풍수지리에 따라 명당으로 여겼다”고 했다. 현재의 안치마을 앞 도로는 과거 바다를 간척해 국도 15호선이 깔려 있다.

김 이장에 따르면 당시 주민들은 뱀이 끼어있던 그 장소를 묏자리로 눈독을 들였다고 한다. 김 이장은 “뱀이 바위에 끼어있는 자체가 흔치 않은 일이라 특이하게 여겼다고 하더라”며 “뱀이 이렇게 낀 데는 이 산에 특별한 기운이 있다고 생각해 꺼려하는 동물인데도 제사도 지냈다고 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날짜를 특정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니었지만 여러 사람이 모여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다. 일제강점기 시절이어서 주민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힘에 기대 어려운 시절을 이겨내고자 했다. 그러나 일본인들에게 이 모습은 달갑지 않았던 것이다.

김 이장은 “당을 차려놓고 제를 지내는 것도 아니고 눈에도 보이지 않는 불분명한 장소를 마음속으로만 신성시 여기는 것뿐이었다”며 “하지만 일본인들은 마을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데는 쇠말뚝 박고 잘라버렸다”며 안타까워했다.

※ 설화 참조 및 인용: ‘서로를 구한 아기 뱀과 두꺼비’ 안오일, ‘고흥군 설화 동화’ 중

■ 설화

사람들 사이에 오랜 시간 구전(口傳)돼 내려오는 이야기. 신화와 전설, 민담을 포괄한다. 일정한 서사의 구조를 갖춰 민간의 생활사와 풍습, 권선징악의 가치 등을 담은 이야기다.

고흥(전남) | 백솔미 기자 b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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