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한국문학 펴내고 싶다”…프랑스 부부의 韓 고전 찬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일 15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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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저녁(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의 한국문화원. 프랑스 관객들은 풍채 좋은 한 외국인이 하얀 부채를 펼쳤다 접었다 하면서 유창한 프랑스어로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입에서는 ‘이선’과 ‘숙향’이라는 한국인 이름이 나왔다. 바로 뒤 한국인 여성이 추임새를 넣어주며 해설을 곁들였다. 많은 관객 중 앞줄에 앉은 한 프랑스인 부부는 유독 그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17세기 한국 고전 소설 ‘숙향전’ 프랑스어판 출판기념회가 이날 파리에서 열렸다.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부부는 17세기 숙향전, 19세기 숙영낭자전, 20세기 판소리 숙영낭자가를 한 권으로 묶어 프랑스어로 공동 번역한 한유미, 에르베 페조디에 부부이고, 공연을 흐뭇하게 바라본 두 사람은 이 책을 출판한 이마고 출판사 대표 마리 잔느, 티에리 오자 부부다. 이 두 부부가 함께 프랑스어로 펴낸 한국 문학 책이 어느새 24권에 이른다. 그 중 한국 고전은 수궁가와 이자람 창작 판소리 ‘사천가’에 이어 세 번째다.

고전에 관심이 많은 번역가였던 한 씨는 1996년 프랑스 유학을 왔다가 이듬해 연극 극작가인 남편 페조디에를 만나 결혼했다. 평소 중국 일본 연극과 고전 희곡에 관심이 많던 페조디에는 한국 고전과 판소리에 새롭게 눈을 떴다. 이 둘은 유럽 최고의 판소리 전문가로 꼽힌다. 흥부가, 심청전, 춘향전, 수궁가, 적벽가 5대 판소리를 프랑스어로 번역했고 페조디에는 흥부가를 북 반주에 따라 완창도 했다.

이 부부는 처음 판소리 숙영낭자가를 알게 된 뒤, 숙영낭자전과 그 이전 버전 숙향전까지 번역하게 됐다. 숙향전은 일본인 통역관들이 한국어를 배우기 위한 텍스트로 활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순한글 표현 빈도가 높다. 한 씨가 한국어의 원문에 최대한 충실하게 번역하면 이를 프랑스인들의 입맛에 맛깔 나게 다듬는 건 남편의 몫이다. 사투리도 꼭 그 맛을 살려낸다. 페조디에는 “번역이 가장 어려운 건 문화 언어”라며 “의식주가 다르기 때문에 한복만 해도 프랑스어에 같은 표현이 없다. 상감마마 영의정과 같은 직위와 호칭도 당시 비슷한 프랑스 역사 속 언어를 찾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이들은 지난주 소르본느 대학에서 숙향전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고 30일에는 파리 북역인문연구소 강당에서 외국 최초로 숙영낭자가 판소리 공연도 개최한다. 한 씨는 “심포지엄에 프랑스 중세문학 전문가, 정신분석 전문가 등이 대거 참석했는데 스스로 고난을 이겨내고 신분을 뛰어넘는 자유연애로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여성 숙향의 주체적인 삶에 페미니즘이 느껴진다는 분석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프랑스인들에게 생소한 한국 고전 책이 나올 수 있게 된 건 출판사 이마고의 덕이 컸다. 한 씨는 “2004년 한국문학번역원에서 한국 문학을 프랑스어로 번역할 수 있도록 지원금을 주겠다고 해 프랑스 웬만한 출판사에 제안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그 때 만난 게 이마고였다”고 말했다.

페르조에 부부의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이마고의 잔느, 오자 부부는 프로젝트 내용을 듣자마자 “프랑스어로 상상하다(imaginer)에서 나온 ‘이마고’ 회사 이름과 한국의 우화, 전설의 상상력이 맥이 닿는다”며 흔쾌히 동의했다. 잔느 대표는 “내년에 한국 우화 전설을 소재로 5권의 책을 묶어 출판할 예정”이라며 “죽을 때까지 한국 문학을 펴내고 싶다”고 밝혔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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