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기생생물은 어떻게 인류를 조종해 왔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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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주인간/캐슬린 매콜리프 지음/김성훈 옮김/352쪽·1만7000원·이와우

외계에서 온 기생생물에 감염된 사람이 이상행동을 보이는 내용을 다룬 영화 ‘패컬티’(1998년). 영화에서처럼 인간의 의식을 지배하는 기생생물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지만 메디나충 등 일부 기생충은 인간에게 실제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저자는 분석했다. 사진 출처 chapter.org
외계에서 온 기생생물에 감염된 사람이 이상행동을 보이는 내용을 다룬 영화 ‘패컬티’(1998년). 영화에서처럼 인간의 의식을 지배하는 기생생물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지만 메디나충 등 일부 기생충은 인간에게 실제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저자는 분석했다. 사진 출처 chapter.org
이상하게도 천적인 고양이에게 끌리는 쥐가 있다. 정신 나간 소리라고 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벌어진 일이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조앤 웹스터 교수는 특정 균에 감염된 쥐가 고양이 오줌에 매료돼 고양이를 보고서도 경계심을 낮추다 못해 고양이를 쫓아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범인은 기생생물이다. 고양이의 내장 속에서만 번식이 가능한 톡소플라스마(T 곤디)가 주인공. 고양이의 배설물을 통해 원래의 영토에서 탈출한 후 먹이를 찾는 쥐가 이 배설물에 접촉하면 그 순간 쥐의 몸속으로 침입해 신경을 조작한다. 쥐는 자신을 해칠 고양이의 뒤꽁무니를 쫓게 되고, 금세 잡아먹히고야 만다. 정신병에 걸린 쥐의 이상 행동이 아니라 쥐를 숙주로 삼은 기생생물의 조종이 배후에 있는 것이다.

T 곤디의 타깃은 쥐만이 아니다. 기생생물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체코의 오토 이로베츠는 조현병을 앓는 사람이 일반인보다 T 곤디에 감염된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밝혀냈다. 실제로 1700년대 프랑스 시인 사이에서 고양이 열풍이 불면서 당시 파리에서 조현병 발병률이 급격히 높아졌다고 한다. 우리가 정신병으로 여기는 질환 역시 알고 보면 기생생물의 배후 조종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 책은 이처럼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행동을 조종하는 기생생물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2010년 미국 최고의 과학기사 수상자 출신인 과학 전문 저널리스트다. 전 세계 최고의 기생생물 연구자를 인터뷰하고, 직접 학회와 현장을 누빈 이야기가 녹아 있어 한 편의 탐사보도 기사를 읽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치과의사 출신으로 다양한 과학서적을 번역한 경험이 있는 한국 번역가의 실력도 읽는 맛을 더해준다.

책은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 기생생물의 다양한 면모를 추적한다. 동유럽의 유명 설화인 ‘뱀파이어’는 종종 밤에 나타나 사람을 죽이고 강간하는, 악랄한 캐릭터다. 특히 다른 이를 물어버리면 똑같이 뱀파이어가 된다. 이 같은 현상은 실제로 광견병 바이러스를 옮은 환자에게서도 나타나는 증세다. 접촉을 통한 전염성이 강하며 이상 행동 역시 유사하다. 이처럼 인간을 숙주로 삼아 옮겨 다니는 기생생물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늘 우리 주변에 존재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생물학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 전 분야로 기생생물의 범위를 확대하는 점 역시 독특하다. 외국인 혐오와 인종 차별 등을 세균 감염에 대한 두려움으로 해석하고, 낯선 사람에게서 감염되지 않기 위해 악수와 적당한 매너가 생겨났다는 해석까지. 정치, 사회, 문화인류학 등 다양한 분야를 기생생물과 숙주, 포식자의 관계로 풀어낸다.

그렇다고 기생생물을 박멸하거나 이들과 전투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저자가 강조하는 점은 기생생물이 인간과 함께할 수밖에 없는 ‘공존자’라는 것이다. 지금껏 밝혀낸 기생생물만 1600여 가지. 사람을 미치게 하거나, 아프게 하는 기생생물뿐 아니라 기쁨과 긍정을 가져다주는 기생생물 역시 많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은 경제학 이론이 아니라 기생생물에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숙주인간#캐슬린 매콜리프#기생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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