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준한, ‘예술을 위한 삶’에서 ‘삶을 위한 예술’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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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하는 성악가 전준한 씨

‘요리하는 성악가’ 전준한은 요리의 비법보다 재료를 강조했다. 그는 “이탈리아 요리는 원재료의 맛과 향이 중요하다. 재료 간의 궁합만 맞는다면 훌륭한 요리가 될 수 있다”며 “노래를 하면서 풍부해진 상상력이 도움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요리하는 성악가’ 전준한은 요리의 비법보다 재료를 강조했다. 그는 “이탈리아 요리는 원재료의 맛과 향이 중요하다. 재료 간의 궁합만 맞는다면 훌륭한 요리가 될 수 있다”며 “노래를 하면서 풍부해진 상상력이 도움이 많이 됐다”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지난달 27일 경기 하남시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오스테리아 308’. 점심시간이 지나고 한창 홀을 정리 중인 주방장이 눈에 들어왔다. 단정하게 넘긴 머리에 수염, 검은색 주방장복이 영락없는 요리사였다. 인사를 건네자 굵은 저음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제가 요리하는 성악가입니다.”》
 
베이스 전준한(45)은 요리도 하고 노래도 부른다. 그가 성악을 선택한 것도, 요리를 택한 것도 ‘운명’에 가까웠다. 대일외국어고 2학년 때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테너 박세원 출연의 오페라 ‘카르멘’을 보러 간 날 이후 그의 인생은 달라졌다.

“오페라에 반했어요. 그날 바로 부모님께 성악을 하겠다고 떼를 썼죠. 멀쩡히 공부 잘하던 아이가 성악을 하겠다고 하니 집에서는 놀랐죠. 한 번만 성악과 시험을 보게 해달라고 약속을 했어요.”

의지는 강했지만 1년이라는 짧은 준비로는 성악과 진학은 힘들었다. 연세대 성악과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다. 군대까지 갔지만 그는 꿈을 버리지 못했다.

“한때는 일부러 목소리를 망치겠다고 담배도 피우고 소리도 많이 질렀는데, 오히려 호흡과 목소리가 좋아지더군요. 정말 이 길이 나의 길인가 싶어 제대 뒤 다시 공부해 연세대 성악과에 들어갔어요.”

30세에 그는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10여 개의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유명 극장에 서는 등 실력을 인정받았다. 2010년 귀국해 국립오페라단 등에서 주역을 맡으며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성악가로 먹고살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러다 한 프로덕션과의 불화 뒤로 다시는 오페라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더군요. 뭘 할까 생각하다가 이탈리아 유학 시절 곧잘 요리를 했던 것을 떠올리고 식당을 차리기로 했죠.”

2015년 11월 식당을 열었다. 이탈리아에서 2년간 민박을 운영하며 쌓은 요리 실력과 가이드를 하며 이탈리아 곳곳을 돌아다닌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입소문이 나면서 동료 성악가들이 찾는 사랑방이 됐다. 실제로 식당 곳곳에는 성악가들의 사인이 붙어 있다.

“이탈리아 가정식을 주로 내놓고 있어요. 누구나 편하게 와서 먹을 수 있고 나이 드신 분들도 드실 수 있는 자극 없는 음식을 만들고 있어요.”

요리와 성악 모두 원리만 이해하면 어렵지 않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앞으로 요리와 성악을 접목해 강연을 하고 새로운 요리도 내놓을 계획이다.

“타계한 루치아노 파바로티 등 많은 성악가들이 먹는 것을 즐겨요. 요리를 잘하는 성악가도 많고요. 유명 성악가가 즐기는 레시피를 연구해 성악가 이름을 딴 ‘파바로티 스파게티’ ‘카레라스 리소토’ 같은 요리를 만들고 싶어요.”

이전에 ‘예술을 위한 삶’을 살았다면 이제는 ‘삶을 위한 예술’이 가능해졌다는 게 그의 말이다. 한 달에 한 번 식당에서 동료 성악가들과 함께하는 ‘밥집 콘서트’가 열린다. 수익은 전부 기부하고 있다. 오페라는 아니지만 콘서트 무대에도 서고 있다. 예전보다 개런티도 높아졌다고 귀띔했다. “선술집(오스테리아)을 뜻하는 식당 이름처럼 이탈리아 골목에서 만날 수 있는 편안한 요리와 노래를 드리고 싶어요.”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전준한#성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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