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핑크 플로이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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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sh You Were Here―핑크 플로이드의 빛과 그림자/마크 블레이크 지음·이경준 옮김/690쪽·3만3000원·안나푸르나

2005년 7월 2일 밤 영국 런던 하이드파크에서 열린 자선 콘서트 ‘라이브 에이트(Live 8)’에 출연한 밴드 핑크 플로이드. 왼쪽부터 데이비드 길모어, 로저 워터스, 닉 메이슨, 리처드 라이트. 네 명의 멤버가 다시 뭉친 24년 만의 공연이었다. 멤버들 뒤로 유명한 ‘The Wall’(벽)의 무대 설비가 보인다. 안나푸르나 제공
2005년 7월 2일 밤 영국 런던 하이드파크에서 열린 자선 콘서트 ‘라이브 에이트(Live 8)’에 출연한 밴드 핑크 플로이드. 왼쪽부터 데이비드 길모어, 로저 워터스, 닉 메이슨, 리처드 라이트. 네 명의 멤버가 다시 뭉친 24년 만의 공연이었다. 멤버들 뒤로 유명한 ‘The Wall’(벽)의 무대 설비가 보인다. 안나푸르나 제공
“언젠가 마리화나를 하게 된다면 꼭 ‘In the Flesh?’를 엄청나게 큰 소리로 들어보고 싶어. 온갖 위대한 밴드가 ‘나는 당신과 하고 싶어요’ 같은 가사를 써댔는데 그 새끼들만은 끝까지 ‘존나게’ 진지했단 말이야. 내가 아는 누구는 판을 틀기 전에 무릎부터 꿇는대. 자기 방에서 진짜로 혼자서 무릎을 꿇고 핑크 플로이드를 듣는단 말이야!”

음악 좋아하는 지인이 언젠가 술자리에서 한 말이다.

1969년 영국 런던 큐 왕립식물원을 찾은 핑크 플로이드.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워터스, 라이트, 길모어, 메이슨.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코리아 제공
1969년 영국 런던 큐 왕립식물원을 찾은 핑크 플로이드.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워터스, 라이트, 길모어, 메이슨.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코리아 제공
1965년 영국 런던에서 결성된 밴드 핑크 플로이드는 진흙탕 같은 록 역사에서 여전히 ‘신(神)’처럼 여겨지는 존재다. 불과 10여 년 동안 자신들과 세계의 록 문법을 파괴하고 재건축하길 반복했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 “밴드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섹스였다”(로저 워터스)거나 “기본적으로 우리는 가장 게으른 밴드였다”(데이비드 길모어)는 고백을 보는 일은 플로이드 신도들에게 성가신 ‘팩트 폭력’일 수 있다. 책의 미덕이 그러나 거기에 있다.

저자는 이 불세출의 록 우상을 향해 연막을 피우고 제단을 올리는 대신 그들 역시 나약한 인간이었음을 보여준다. ‘Dark Side of the Moon’을 작업할 때 멤버들이 BBC 코미디 쇼와 아스널 축구 경기를 많이 봤다거나, 사회주의자를 자처한 워터스가 ‘The Wall’ 앨범을 두 장짜리로 만들려던 게 실은 재정 악화를 단기간에 회복하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는 사실들 말이다. 그들이 기나긴 즉흥연주를 싸질러 놓고 음반으로 정리하지 못해 사투하고, 지독한 의견차로 갈라서 삿대질하며 허송세월하는 장면들을 보라. 범인(凡人)과 다를 게 무언가.

동네 친구, 전 여자 친구, 초빙연주자, 엔지니어, 프로듀서, 운전사, 조명 담당자…. 책의 등뼈와 혈관을 이루는 멤버와 주변 인물의 방대한 증언은 100만 개의 스냅사진과 포스트잇처럼 책장 가득 펄럭인다. 코러스 가수가 수고비로 30파운드를 받고 녹음 뒤 남자 친구와 저녁을 먹었다든지 무대기술자 믹 클루친스키가 계란프라이 28개를 먹은 대식가였다든지 하는 팩트의 폭격이 좀 과하다 싶은 느낌도 있다. 하지만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에 ‘Atom Heart Mother’를 넣고 싶었는데 거절당했다거나, 앨범 표지의 젖소 이름이 ‘룰루벨 3세’였다는 사실, ‘Meddle’을 혹평한 음악잡지 부편집인에게 멤버들이 성탄 선물로 튀어나오는 권투 펀치 상자를 배달했다는 대목 등 시시콜콜한 재미를 거부하기 힘들다. 디자인팀이 직접 들려주는 신비로운 앨범 표지 제작 이야기, 중학생들을 섭외해서 ‘우리에겐 교육이 필요 없어/좀 내버려둬’(‘Another Brick in the Wall’)란 노래를 도대체 어떻게 부르게 시켰던 건지 궁금하지 않은가. 책에 답이 있다.

플로이드만의 압도적 아우라를 형성한 사운드 제작 과정이 덜 담긴 점은 아쉽다. 하긴 그랬다면 책은 성경보다 두꺼워졌을 것이다.

플로이드 음악의 새하얀 날개 밑에 붙은 ‘때’를 외면하고 싶다면 책장을 펴지도 않는 게 낫다. 책의 디테일과 재미는 엄청난 가속도로 마음속 우상을 속계로 추락시킬 테니까. 하지만 당신이 가진 음반과 영상물은 록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The Wall’이나 폼페이 무관객 콘서트의 무대 뒤편으로 데려가 주지 않을 것이다. 아직 위키피디아와 유튜브가 때려눕힐 수 없는 책들이 있다. 이 책도 그러하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wish you were here#핑크 플로이드의 빛과 그림자#마크 블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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