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버스에 찍힌 대자연의 숨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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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김아타씨의 ‘온 네이처’ 프로젝트

김아타 씨는 ‘온 네이처’ 프로젝트의 흰색 캔버스에 대해 “나를 비워 상대를 존중하는 대화의 의미”라면서 “아티스트란 작품으로 세상과 대화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김아타 씨 제공
김아타 씨는 ‘온 네이처’ 프로젝트의 흰색 캔버스에 대해 “나를 비워 상대를 존중하는 대화의 의미”라면서 “아티스트란 작품으로 세상과 대화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김아타 씨 제공
 김아타 씨(61)의 ‘온 네이처(On nature)’ 프로젝트가 막바지로 접어들었다. 전 세계 44곳에 대형 캔버스를 설치하고 2년이 지난 뒤 거둬 오는 작업이다. 히말라야 산맥, 이탈리아 베네치아, 티베트 고원, 강원 원시림…. 손끝 하나 대지 않은 캔버스에 무슨 변화가 있을까?

‘온 네이처’ 프로젝트를 위해 김아타 씨는 지구촌 곳곳에 대형 캔버스를 설치했다. 위쪽부터 미국 뉴멕시코 주, 강원 인제 원시림의 가을, 같은 장소의 겨울. 겨울엔 캔버스가 눈 속에 반쯤 묻힌 채 석 달을 보냈다. 김아타 씨 제공
‘온 네이처’ 프로젝트를 위해 김아타 씨는 지구촌 곳곳에 대형 캔버스를 설치했다. 위쪽부터 미국 뉴멕시코 주, 강원 인제 원시림의 가을, 같은 장소의 겨울. 겨울엔 캔버스가 눈 속에 반쯤 묻힌 채 석 달을 보냈다. 김아타 씨 제공
 19일 경기 파주의 작업실에서 만난 김 씨는 그 변화가 엄청나다고 했다. 계절에 따라 눈과 비를 맞고, 바람에 부대끼고, 햇빛에 바래고, 벌레들이 다퉈 다녀갔다. 거제도 바닷물에 담긴 캔버스를 온갖 바다 생물이 매만졌다. 2년의 시간이 담긴 캔버스들을 영상으로 보여주면서 그는 “자연이 그린 그림”이라고 했다. 인도 부다가야의 캔버스는 지독하게 지저분했고 미국 뉴멕시코 주 인디언보호구역의 캔버스는 놀라울 정도로 깨끗했다. “부다가야의 오염된 환경 때문이지요. 뉴멕시코 주의 캔버스에는 뿔 두 개가 들이받아 생긴 구멍만 있었어요.” 그야말로 자연의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2001년 휴스턴 포토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사진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그다. 베트남전 상이군인이 벌거벗은 채 아크릴 박스에 들어가 있는 사진이었다. 박스 안에 놓인 누드의 인물들을 카메라에 담은 ‘뮤지엄 프로젝트’ 중 하나이기도 했다. “박스에 담아둠으로써 의미를 부여했다. 모든 존재는 저마다의 가치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의 문제의식은 ‘온 에어 프로젝트’에서 심화됐다. 조리개를 8시간 열어두고 뉴욕 등 대도시의 거리를 촬영하는 작업이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 카메라를 노출해 찍자 놀라운 일이 생겼다. 건물과 간판은 그대로인데, 움직이는 것들이 사라졌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라진다”는 작가의 철학이 작품으로 현현(顯現)됐다. 끈기 있게 매달려온 이 작업에 대해 그는 “타자에 대한 이해가 내 예술의 동력이었다”고 돌아봤다.

비무장지대(DMZ)에서 쏜 포탄 파편에 처참하게 찢긴 천 조각을 이어 붙인 ‘On nature, 인간 등정의 발자취’ 세 점. 각각 170cm×220cm 크기다. 김아타 씨는 갈등과 야만이 빚었던 참상 또한 외면할 수 없는 인간의 역사이며 이 같은 인간의 본능 역시 자연의 일부라고 말한다. 김아타 씨 제공
비무장지대(DMZ)에서 쏜 포탄 파편에 처참하게 찢긴 천 조각을 이어 붙인 ‘On nature, 인간 등정의 발자취’ 세 점. 각각 170cm×220cm 크기다. 김아타 씨는 갈등과 야만이 빚었던 참상 또한 외면할 수 없는 인간의 역사이며 이 같은 인간의 본능 역시 자연의 일부라고 말한다. 김아타 씨 제공
 최근 집중하는 ‘온 네이처’ 프로젝트에 대해 그는 “내 오랜 의문에 대한 해답”이라고 말한다. ‘나는 왜 예술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왔다는 김 씨는 ‘온 네이처’를 통해 자연과 마주함으로써 “내가 세상을 만나는 법, 세상을 경외하는 통로가 예술이라는 걸 알게 됐다”는 것이다. 비무장지대(DMZ)에선 군 부대의 협조를 얻어 캔버스에 포(砲)를 쏘았다. 남은 천 조각을 수습해서 검게 칠한 작품을 만들었다. 그는 “포는 인간의 본능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본능도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에 이 작업을 감행했다”는 말로 의미를 부여했다.

 이 캔버스들을 한자리에 모아 전시하는 ‘블랙 마운틴 뮤지엄’(가칭)을 강원 홍천에 세울 계획이라고 김 씨는 밝혔다. 포 작업의 캔버스에 쓰인 검정, ‘블랙 마운틴’의 블랙 등에서 검은색에 대한 작가의 애착이 짐작됐다. “블랙은 부정적 의미가 아니다. 더하거나 뺄 수 없는 완전한 색이고 사유와 성찰이 녹아 있는 색이다.” 최근 사회 이슈가 된 ‘블랙리스트’를 언급하면서 그는 “블랙리스트란, 역설적이지만 우리를 사유하게 하지 않느냐”라고 덧붙였다. 그는 ‘블랙 마운틴 뮤지엄’에 걸린 ‘자연이 그린 그림’들을 만남으로써 사람들이 자연으로 인해 치유받고, 사유하고, 성찰하게 되기를 꿈꾼다고 밝혔다.

김지영기자 kimjy@donga.com
#김아타#온 네이처#on 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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