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들의 별난 술버릇-내밀한 개인사 ‘흥미진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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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계 일화 엮은 책 2권
‘문단 풍속…’ ‘사랑을 쓰다…’

 소설 ‘빈처’의 작가 현진건(1900∼1943)이 동아일보 사회부장으로 일하던 시절, 사흘이 멀다 하고 술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창의문 고개를 넘어오곤 했다. 근처에 살던 사람들은 “동아일보 현 선생이 또 술에 취해 돌아오는군”이라고 했다고 한다. 현진건의 술버릇이 취하면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평론가 이유식 씨의 ‘문단 풍속, 문인 풍경’(푸른사상)에 소개된 일화 중 하나다.

 한국 문학의 다양한 일화를 엮은 책 두 권이 나왔다. ‘문단 풍속…’에서는 192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우리 문단의 비화 50편이 실렸다. 베스트셀러 뒷얘기, 필화 사건 등부터 문인들의 필명과 별명 이야기, 술버릇과 취미 등을 만날 수 있다. ‘사랑을 쓰다, 그리다, 그리워하다’(루이앤휴잇)는 이상, 이광수, 김동인, 김영랑 등 문인들이 가족과 연인, 동료 작가들에게 보낸 편지를 엮은 책이다.

  ‘문단 풍속…’에 실린 문인들의 별난 술버릇은 현진건뿐만은 아니다. 시인 기형도는 술자리에서 함께한 문인들의 얼굴을 사인펜으로 그려주는 버릇이 있었다. 함민복 시인은 술에 취해 종종 소지품을 몽땅 잃어버리곤 했다.

 별명 얘기도 ‘목마와 숙녀’의 시인 박인환은 생전에 댄디보이처럼 화려하게 멋을 내고 다닌지라 ‘명동신사’로, 월북한 평론가 김남천은 워낙 잘생겨서 ‘조선의 발렌티노’(배우 루돌프 발렌티노의 이름을 따온 별명)로 불렸다. 소설가 이문열은 한때 ‘도깨비’로 불렸다. 바둑실력이 고수인 그가 얼굴 한번 비치지 않다가 느닷없이 나타나 며칠을 바둑알을 굴리는 바람에 단골 바둑집에서 붙여준 별명이다.

 유주현의 ‘조선총독부’가 1967년 전 5권으로 출간됐을 때 ‘실록대하소설’이라는 설명이 붙었는데 독자들에겐 이 ‘대하(大河)’라는 용어가 낯선 것이었다. 이를 작가의 호로 착각하고 작가를 ‘대하 선생’이라고 불렀다는 후문이 있었다. 최인호의 유명한 연재소설 ‘별들의 고향’을 출간할 때 출판사에선 당시로선 유례를 찾기 어려운 ‘7년 독점 계약’이라는 입도선매식 조건을 내걸었다는 얘기도 흥미롭다.

  ‘사랑을…’에 묶인 편지들은 절절하다. 이광수는 일곱 살 난 아들 봉근이 사고로 죽자 아들을 향한 편지를 쓴다. ‘아직도 문소리가 날 때마다 혹시나 네가 들어오는가 싶어 고개를 돌린다. 큰 길가에서 전차와 자동차를 보고 서 있지는 않은지….’ 이상이 일본 유학 중이던 김기림에게 ‘무사히 착석하였다니 내 기억 속에 김기림이라는 공석이 하나 결정적으로 생겼나 보이다’라고 적어 보낸 편지에선 문우의 진한 우정을 확인할 수 있다. 모두 작가들의 내밀한 개인사를 엿볼 수 있는 귀한 자료들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문인들#기형도#이문열#유주현#술버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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