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뭉근하게 끓여낸 청국장같은 가족의 맛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5일 03시 00분


코멘트

◇니나 내나/이동은 글·정이용 그림/320쪽·1만3000원·애니북스

책의 마지막 장면. 서른 살이 지난 뒤 가족과 이런 포즈로 사진을 찍은 적이 있나. 이 이야기는 현실인 듯 비현실이다. 애니북스 제공
책의 마지막 장면. 서른 살이 지난 뒤 가족과 이런 포즈로 사진을 찍은 적이 있나. 이 이야기는 현실인 듯 비현실이다. 애니북스 제공
 가족이라는 관계의 전형성이 빠르게 허물어져 가는 시대다. 형제와 어머니의 유골을 매장한 땅 위에서 화기애애하게 기념사진을 찍는 가족 2대의 모습으로 끝맺은 이 이야기는 당면한 현실보다 10년쯤 전의 과거를 닮았다.

 작은 사고를 계기로 치매가 발병한 아버지, 맏딸과 두 아들이 중심인물이다. 오래전 그들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로부터 엽서 한 장이 날아든다. 자식들은 자잘한 소동을 겪으며 함께 어머니를 찾아간다. 우여곡절 끝에 목적지에 이른 그들을 맞이하는 건 이미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장례식이다.

 등장인물 모두가 저마다의 결핍을 품었지만 구제 불능의 결함으로부터는 거리가 멀다. 각자의 굽이굽이 고난은 어느 정도 참고 넘길 만한 분위기로 다가든다. 그런 점에서 이 만화 속 이야기는 현실적인 듯 비현실적이다. 아기자기한 미시적 사실감을 갖췄지만 한발 물러나 바라본 덩어리는 현실에서 살짝 붕 떠 버석거린다.

 하지만 디테일 짜임을 씹는 재미가 빼곡해 줄곧 심심하지 않다. 주말 밤 소파에 앉아 TV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중간부터 시청한 단막극 정도의 소박하지만 뿌듯한 재미다.

 자식들 가슴에 못 박고 앗아갔던 돈을 돌려주는 건 어머니가 가족을 버리고 선택했던, 이제는 남남이 된 남자의 손이다. 자식들은 그 남자의 새 아내가 차려준 국수 위에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손수 담갔다는 김치를 얹어 말없이 먹는다.

 캐릭터로 인한 비현실감이 이런 아이러니의 무심한 중첩에 의해 옅어진다. 대화가 전개되는 상황마다 컷을 담는 시각을 물 흐르듯 변화시키지만 구성의 솜씨를 과시한 흔적이 없다. 뭉근한 불에 차분히 끓인, 미지근한 청국장 맛. 푸짐하지 않았는데 ‘잘 먹었다’ 싶다.

손택균기자 sohn@donga.com
#니나 내나#이동은#가족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