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눈살을 찌푸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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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어문기자
손진호 어문기자
“몰라보게 컸네. 예뻐졌구나.” 추석 명절날, 조카들에게 인사말을 건네자 하나같이 입꼬리를 올리며 배시시 웃는다. 공부 취업 결혼 등 무거운 얘기를 끄집어내 눈총 안 받길 잘했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

눈과 관련해 자주 쓰면서도 헷갈리는 표현이 있다. 뭔가 못마땅해 양미간을 찡그리는 걸 뜻하는 ‘눈살을 찌푸리다’다. 발음에 이끌려 눈쌀을 입길에 올리는 이가 많지만 ‘눈살’이 옳다.

한글맞춤법 제5항은 ‘한 형태소 안에서 받침이 없거나 ㄴ, ㄹ, ㅁ, ㅇ 받침 뒤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나면 된소리로 적는다’고 돼 있다. 가만, 이 규정대로라면 눈쌀이 맞는 것 아닌가. ㄴ 받침 뒤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나니 말이다. 그렇지 않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한 형태소 안에서’라는 전제다. 형태소는 ‘뜻을 가진 가장 작은 말의 단위’다. 눈살은 ‘눈+살(肉)’ 구조인데 눈과 살은 각자가 형태소다. 형태소가 둘 이상 더해진 말은 형태소 각각의 원형을 밝혀 적어야 하니 ‘눈살’이 맞다.

그렇다면 ‘등쌀’은? ‘탐관오리의 등쌀에 어쩌고저쩌고…’에 나타나는 등쌀은 한 형태소의 말로, ‘몹시 귀찮게 구는 짓’을 가리킨다. 그러니 등쌀이 맞다. 등살(등+살)도 있긴 한데, 뱃살 이맛살처럼 ‘등에 있는 근육’을 뜻하니 ‘등쌀’과는 관계가 없다.

눈썹은 남북한 간 말법이 다르다. 눈썹의 옛말이 ‘눈섭’인데 우리는 눈썹을, 북한은 눈섭을 표준어로 삼고 있다.

눈의 세계에도 재미난 낱말들이 수두룩하다. ‘백안시(白眼視)’ ‘청안시(靑眼視)’가 대표적이다. 남을 업신여기거나 무시하는 태도로 흘겨보는 게 백안시이고, 청안시는 반대로 남을 달갑게 여겨 좋은 마음으로 보는 걸 말한다. 한두 번 보고 그대로 해내는 재주를 눈썰미라고 한다. 그러니 한 번 들은 것을 그대로 흉내 내는 재주는 귀썰미다. 허나 청안시, 귀썰미라는 말을 아는 이가 얼마나 될지. 가시눈 도끼눈 송곳눈도 있는데, 모두 적의를 가지고 날카롭게 쏘아보는 눈을 뜻한다.

누가 뭐래도 눈의 세계에서 돋보이는 낱말은 ‘눈꼬리’다. 한때 ‘눈초리의 잘못’으로 묶여 있었지만 언중의 말 씀씀이에 힘입어 표준어가 됐다. 하기야 옛날에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눈꼬리’와 ‘눈초리’가 같은 말일 수 없다. 눈꼬리는 볼 수 있지만, 눈초리는 느낄 수만 있으니 말이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눈살을 찌푸리다#눈썹#눈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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