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매거진]패스트푸드의 장점만 살린 ‘패스트 캐주얼’을 아시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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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인의 미식견문록

패스트푸드 보다는 맛과 질이 보장되고, 캐주얼다이닝 보다는 저렴한 ‘패스트 캐주얼’이 뜨고 있다. 해외의 유명 셰프들도 이 바람에 동참하고 있다. 프랑스의 미슐랭 3스타 셰프인 미셸 브라와 세바스티앙브라 셰프는 크레페 풍의 ‘카푸친’을 메뉴를 개발해‘카푸친 시그네 브라’를 개점했다. 바앤다이닝 제공
패스트푸드 보다는 맛과 질이 보장되고, 캐주얼다이닝 보다는 저렴한 ‘패스트 캐주얼’이 뜨고 있다. 해외의 유명 셰프들도 이 바람에 동참하고 있다. 프랑스의 미슐랭 3스타 셰프인 미셸 브라와 세바스티앙브라 셰프는 크레페 풍의 ‘카푸친’을 메뉴를 개발해‘카푸친 시그네 브라’를 개점했다. 바앤다이닝 제공
해외의 ‘쉐이크 쉑’ 매장.
해외의 ‘쉐이크 쉑’ 매장.
지난달 22일 서울 강남대로에 문을 연 미국발 버거 전문점 앞에는 폭염 속에서도 이곳의 햄버거를 먹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이어지고 있다. ‘쉐이크쉑’의 전 세계 98번째 매장이다. ‘쉐이크 쉑’은 창업한 지 10여 년 만에 미국 외에 러시아, 유럽, 중동 등으로도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다. 한국 매장은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다.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게 햄버거를 먹을 수 있는 환경인데도 낯선 버거집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자는 거품일 거라고 하고 혹자는 미국에서 맛본 맛 그대로라며 칭송한다. 한 입 베어 물면 입안으로 흘러 들어오는 진한 육즙과 질 좋은 패티를 내세운 프리미엄 버거 시장이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른 것일까. 2배 가까이 비싼 비용을 햄버거에 기꺼이 지불하는 현상을 ‘뭉근한 육즙과 쫄깃한 번’이 만들어낸 효과, 햄버거의 신분 상승으로만 해석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는 이쯤에서 ‘패스트 캐주얼’이라는 다이닝 트렌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로콜’의 햄버거는 건강에 좋고 값도 저렴하다.
‘로콜’의 햄버거는 건강에 좋고 값도 저렴하다.
빠르되 건강하고 저렴하되 고급지다

패스트 캐주얼은 패스트푸드와 캐주얼의 중간 개념으로, 패스트푸드만큼 빠르면서도 건강하고 안전한 음식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외식 형태다. 글로벌 시장 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14년까지 패스트 캐주얼 시장은 무려 550% 성장했고, 같은 기간 패스트푸드와 비교해 10배가 넘는 성장 폭을 기록했다.

2015년 1월, 대표적인 패스트 캐주얼 브랜드로 출발한 ‘쉐이크쉑’이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했고, 거래 첫날 공모가(21달러)에서 118.57% 폭등하며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렸다. 일각에서는 거품 주가라는 엇갈리는 의견도 있지만, 패스트 캐주얼 시장에 큰 영향을 불어넣은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패스트 캐주얼의 조상 뻘쯤 되는 곳이 있다. 1993년 설립된 멕시칸 그릴 에친 ‘치폴레’다. 2011년에는 ‘포천’이 뽑은 ‘가장 빨리 성장하는 기업 100’에 오르기도 했으며 ‘타임’지는 치폴레의 성공기를 애플사와 비교해 두 회사의 공통점으로 ‘선택과 집중’을 꼽기도 했다.
‘치폴레’의 부리또.
‘치폴레’의 부리또.

대부분의 패스트푸드 체인은 사람들을 자극할 메뉴를 폭넓게 펼쳐놓는 반면 이곳은 부리토, 타코, 보울, 샐러드 단 4종류의 메뉴만 선보인다. 이는 쉐이크쉑도 다르지 않다. 새로운 메뉴 개발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것이 창립자 대니 마이어의 철칙이다. 잘하는 메뉴에만 집중한다는 것.

잇따른 성공 사례를 통해 패스트 캐주얼을 정의하는 몇 가지가 규칙 아닌 규칙이 생겨났다. 패스트푸드보다 건강하고(Healthier) 신선하며 (Fresh) 높은 품질(High Quality)을 갖춰야 한다. 주문 시 조리가 시작되며(Made to Order), 자연적(Natural)인 로컬 재료(Local Ingredients)를 사용해야 한다. 서비스 면에서는 패스트푸드 체인들과 똑같이 테이블 서비스를 하지 않는 것(Don’t offer full table service)이 특징이다. 가격은 패스트푸드가 3000∼6000원이라면 패스트 캐주얼은 약 2배에 해당하는 7000∼1만5000원 선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로컬 재료’ 사용을 중요하게 여기는 패스트 캐주얼의 정체성을 고려한다면 서울 강남에 문을 연 ‘쉐이크쉑’ 버거에도 직접 만든 번과 한우 패티를 사용했을 것 같지만, 사실상 둘 다 미국 현지의 것을 공수한다. 패티는 미국 앵거스 쇠고기를 사용해 지방과 살코기 비율을 2 대 8로 유지하는 고유 레시피를 따른 것이고 감자 반죽으로 만든 번은 미국산 감자를 이용해 현지에서 생산했다. 브랜드와 맛은 동일할지 몰라도 브랜드의 근간을 이루는 ‘패스트 캐주얼’ 콘셉트는 일면 손상된 부분이 없지 않다.
셰프들이 나섰다

건강에 대한 의식이 높아진 현대인들에게 합리적 가격 선에서 빠르고 맛있으면서 패스트푸드보다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한 끼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들어 전 세계적으로 유명 셰프들이 1년에 어쩌다 한번씩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의 고급 요리에 만족하지 않고, 패스트 캐주얼 시장에 동참하고 나선 점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코기 BBQ’ 푸드 트럭으로 이름을 알린 로이 최 셰프와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 ‘콰’의 대니얼 패터슨 셰프는 매드 심포지엄을 통해 ‘로콜(LOCO’L)’ 프로젝트를 처음 발표하며 화제를 불러 모았다. 이들은 ‘로콜’을 패스트푸드라고 언급하지만 사실 지향하는 바는 패스트 캐주얼과 다를 바 없다.

“로스앤젤레스 전체 인구 중 6만5000명의 아이들은 부유하게 음식을 즐기는 반면, 500만 명에 가까운 아이들은 굶주리는 게 현실입니다.” 로이 최 셰프는 호화로운 로스앤젤레스의 이면을 정부가 바꿀 수 없다면 자신이 가진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더불어 패터슨 셰프는 “패스트푸드나 편의점은 오늘날 젊은이들의 ‘진정한 음식’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하는 요인 중 하나”라며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비즈니스를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유명한 레스토랑 셰프들도 뜻을 같이하며 후원에 나섰다. 특히 샌프란시스코의 유명 베이커리 ‘타르틴’의 채드 로베르트슨,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노마’의 르네 레드제피 등은 로콜의 메뉴 개발에도 적극 동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강한 패스트푸드를 표방한 ‘로콜’의 로이 최 셰프.
건강한 패스트푸드를 표방한 ‘로콜’의 로이 최 셰프.

로이 최 셰프와 패터슨 셰프가 야심 차게 선보인 ‘로콜’은 드디어 올해 LA 남부 와츠 지역에서 베일을 벗으며 첫 선을 보였다. 와츠 지역은 흑인 밀집 거주지역으로 LA 내에서도 대표적인 슬럼가로 통한다. 로콜의 메뉴는 겉으로만 보면 여느 패스트푸드 메뉴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지역 유명 베이커리의 번, 두부와 곡물이 배합된 패티, 한국의 반찬에서 모티브를 따온 신선한 야채 등 건강한 조합으로 이를 4달러 이하의 가격으로 판매한다. ‘로콜’은 ‘미쳤다’는 의미의 스페인어 ‘LOCO’와 ‘지역’을 뜻하는 영어 ‘LOCAL’의 합성어다.
부자 셰프인 아버지 미셸 브라, 세바스티앙(왼쪽) 셰프.
부자 셰프인 아버지 미셸 브라, 세바스티앙(왼쪽) 셰프.

프랑스를 대표하는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브라’의 미셸 브라 셰프가 자신의 아들 세바스티앙 브라 셰프와 패스트 캐주얼 푸드 전문점 ‘카푸친 시그네 브라’를 개점했다. “누구든 서서 먹을 수 있는 합리적인 가격에 제 철 건강한 퀴진을 제공하고 싶다”며 크레페 풍의 샌드위치인 ‘카푸친’이라는 메뉴를 개발해 2014년부터 선보이기 시작했다. ‘카푸친’은 메밀 가루와 밀가루로 만든 얇은 빵에 다양한 재료를 담아 즐기는 음식이다. 소시지를 곁들인 알리고, 푸아그라와 버섯, 살구 처트니를 곁들인 라귀올 치즈 등 20가지 조합으로 저마다 취향에 맞게 즐길 수 있다. 가격은 5.40유로부터 5.60유로까지다.
일본의 마끼를 응용한 ‘우마 테마케리아’.
일본의 마끼를 응용한 ‘우마 테마케리아’.
‘우마 테마케리아’의 크리스 재클 셰프.
‘우마 테마케리아’의 크리스 재클 셰프.

김으로 싸서 손으로 잡고 먹는 테마키도 패스트 캐주얼 푸드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뉴욕을 대표하는 레스토랑 ‘일레븐 매디슨 파크’ 출신 크리스 재클 셰프는 일식당에서 근무하던 시절 당시 직원들의 식사로 나오던 테마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을 거쳐 맛, 텍스처 등 테마키의 새로운 조화를 실험한 끝에 2014년 테마키를 전문으로 하는 브라질식-일식당 ‘우마 테마케리아’를 뉴욕에 오픈했다. 이곳에서는 주문과 동시에 점원이 즉석에서 테마키를 싸주는데 참치 연어 게살 두부까지 다양한 테마키가 준비되어 있으며 여기에 아보카도 라임 등 브라질 풍미를 가미한 것이 특징이다.

‘푸쿠’의 한국계 미국인 데이비드 장 셰프.
‘푸쿠’의 한국계 미국인 데이비드 장 셰프.
뉴욕 이스트빌리지에 ‘모모푸쿠’라는 브랜드로 누들바, 쌈바, 밀크바 등 자신만의 외식 제국을 만들어낸 한국계 미국인 데이비드 장 셰프도 패스트 캐주얼 대열에 가세했다. 지난해 ‘푸쿠’라는 새로운 식당을 같은 거리에 개점하고 한국식 프라이드 치킨 샌드위치인 ‘코레아노(KOREANO)’를 선보인 것.

대표 메뉴인 스파이시 프라이드 치킨 샌드위치의 경우 닭의 허벅살을 하바네로 퓌레, 버터밀크, 다양한 향신료와 데이비드 장의 특제 소스로 버무려 튀겨 만든 프라이드 치킨을 번에 끼워서 먹는다.

이 외에도 많은 셰프가 패스트 캐주얼에 동참하며 새로운 체인으로도 준비하고 있어 당분간 패스트 캐주얼 시장은 점차 다양한 면모로 성장해갈 전망이다. 쉐이크쉑의 이색 현상은 서막에 불과하다.
박홍인 바앤다이닝 편집장
#패스트캐주얼#박홍인#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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