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빈대떡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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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어문기자
손진호 어문기자
엎어진 솥뚜껑 위에서 노릇하게 익어가는 빈대떡의 고소한 냄새. 비 내리는 어슬한 저녁, 술꾼들은 막걸리 한 사발 들이켜고, 빈대떡 한 점을 목으로 넘기며 행복을 느낀다.

‘빈대떡.’ 녹두를 맷돌에 갈아 돼지고기 등을 넣고 번철(燔鐵·무쇠 그릇)에 지진 떡이다. 한때는 ‘빈자떡’이 표준어였고 ‘빈대떡’이 사투리였지만, 지금은 처지가 뒤바뀌었다. 빈대떡과 녹두지짐을 같은 말로 보는 우리와 달리, 북한은 녹두지짐만을 문화어로 삼고 있다.

‘빈대떡’이라는 말의 유래는? 진갑곤 선생은 조선 숙종 3년(1677년)에 간행한 박통사언해(朴通事諺解)에 보이는 ‘빙져’에서 나왔다고 본다. 빙져→빙쟈→빈쟈+떡→빈자떡으로 변화를 보이다가 1938년에 나온 조선어사전에 ‘빈대떡’으로 정착됐다는 것(장영준, 언어 속으로).

조항범 충북대 교수는 ‘빈자떡’이 ‘빈대떡’으로 바뀐 것에 대해 재미있는 견해를 내놓는다. 빈대떡의 빈대는 납작한 해충 ‘빈대’에 이끌려 새롭게 연상된 단어로 봐야 한다는 것. ‘납작하게 생긴 밤’을 ‘빈대밤’, ‘납작한 코’를 ‘빈대코’라 하듯 ‘납작한 떡’ 모양에 이끌려 ‘빈대떡’으로 부르다 굳어졌다는 주장이다. 그런가 하면 ‘손님 접대용 음식’이란 뜻의 ‘빈대(賓待)떡’이라는 설도 있다.

당장 주머니에 돈이 없어도 술을 마실 수 있는 방법은 있었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외상’이다. 오죽했으면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속담이 생기고, ‘외상술’이 표제어에 올랐을까. 가을에 벼로 갚기로 하고 먹는 ‘볏술’이 바로 외상술이다. 한데 이상하다. 왜 ‘외상을 긋는다’고 할까.

예전에는 글을 모르는 술집 주인이 많아 외상 내용을 장부에 제대로 적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벽에다 마신 술잔 수만큼 작대기를 긋는 것이었다. ‘긋다’라는 동사에 ‘물건값이나 밥값, 술값 따위를 바로 내지 않고 외상으로 처리하다’는 뜻이 들어가게 된 연유다.

“아주머니, 오늘 술값은 달아 두세요.” 안면을 무기 삼아 주인에게 호기롭게 던지는 ‘달다’란 말에는 ‘장부에 적다’는 뜻도 있다.

가만, 요즘 대세인 카드 결제도 따지고 보면 외상 아닌가. 그나저나 결제 방법이 바뀌면 그걸 표현하는 ‘동사(動詞)’도 바뀐다. 예전에는 외상을 그었으나, 요즘은 카드를 긁는다. 서민들은 예나 지금이나 긋고, 긁으며 살아간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빈대떡#녹두지짐#긋다#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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