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꼭 사각형이어야 한다는 오해와 착각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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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모난 집 짓기’ 책 펴낸 건축가 서현 교수

《형태가 복잡하면 만들기 어려웠으리라고, 반대로 보기에 밋밋하고 단순하면 만들기 수월했으리라고 여긴다. 오해다.

최근 새 책 ‘세모난 집 짓기’(효형출판)를 펴낸 서현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는 책으로 명성을 얻은 건축가다.

1990년대 후반부터 건축물과 건축사 이야기를 주재료 삼아 일상의 사색과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버무린 책을 잇달아 펴내 주목받았다.

맺음말에서 그는 “써야 할 책은 이미 다 썼다고 말해 왔다.

지금 다시 내는 이 책은 새로 지은 건물의 가치를 동의 받을 생각으로 쓴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최종 설계안 모형 옆에 선 서현 교수. 전면부 유리창 디자인은 시공 과정에서 변화를 겪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최종 설계안 모형 옆에 선 서현 교수. 전면부 유리창 디자인은 시공 과정에서 변화를 겪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글감이 된 건물은 2014년 11월 설계를 시작해 올해 초 완공한 제주 서귀포시 대포동 도로변의 주택이다. 8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서 교수는 “집을 지으며 만나고 선택한 사람들과 어떻게 작업했는지에 대한 기록”이라고 말했다. 그 기록은 ‘보고 그리기 쉬운 건물은 만들기도 쉬웠을 것’이라는 흔한 오해에 대한 반론으로 빼곡하다.

소개를 통해 설계 의뢰 e메일을 보내온 건축주는 “흰 빛깔의, 현대적이고 입체적인 2층 주택”을 요구했다. 완성된 건물은 사진에서 보듯 매끈하다. ‘콘크리트 벽 치고 남쪽 모서리에 크게 창을 뚫었네. 단정하고 예쁘장하게 쓱쓱 그려 올렸네’라는 식으로 오해받기 딱 좋게 생겼다. 하지만 이 집은 첫발부터 난제(難題)였다.

거실 천장 슬래브의 보 뒤로 감춘 간접조명을 켠 모습. 천장에 낸 줄눈도 집요하게 삼각형으로 일관했다. 서현 제공
거실 천장 슬래브의 보 뒤로 감춘 간접조명을 켠 모습. 천장에 낸 줄눈도 집요하게 삼각형으로 일관했다. 서현 제공
건축주는 처음 보낸 글에서 땅에 대해 “언덕 위라 바다를 마주한 전망이 아름답다. 맑은 날은 마라도와 섭섬(서귀포 앞 숲섬)이 보인다”고 설명했다. 서 교수가 비행기를 타고 찾아가 확인한 대지는 620m² 면적의 삼각형 땅이었다. 도로에서 올라오는 경사는 45도에 이를 정도로 가팔랐다. 바다는 아득히 멀었다. 간판, 비닐하우스, 전신주와 전깃줄 뭉치 너머로 ‘먼 물’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설계비와 세금을 제외하고 공사비로 처음 제시받은 금액은 2억 원이었다. 누군가는 그 돈에 집을 지어 주겠다고 했겠지만 나는 불가능했다. 어쨌거나 바다를 관망하는, ‘스스로에게 주는 필생의 선물을 지어 달라’는 요청에 부응할 만큼 드라마틱한 거실 공간을 갖춘 삼각형 평면의 유리벽 집을 일단 설계했다. 견적은 8억 원대였다.”

남동쪽으로 접한 도로에서 바라본 건물 외관. ‘삼각형’ 평면을 건물 전체에 반복되는 패턴으로 삼았다. 삼각형 통풍창 만들기, 창 모서리에 하중이 오지 않도록 삼각형 트러스 짜기 등 관습을 거스르는 난관이 많았다. 박영채 제공
남동쪽으로 접한 도로에서 바라본 건물 외관. ‘삼각형’ 평면을 건물 전체에 반복되는 패턴으로 삼았다. 삼각형 통풍창 만들기, 창 모서리에 하중이 오지 않도록 삼각형 트러스 짜기 등 관습을 거스르는 난관이 많았다. 박영채 제공
거실의 큰 창만 남긴 채 나머지 벽체를 콘크리트로 바꾼 대안으로 전환하면서 공사 예산이 6억 원 선으로 조정됐다. 협의한 예산 제한을 최대한 지켜내기 위한 국지전을 하루하루 치르면서 도면 위 상상도를 실물로 구현하는 과정을 시시콜콜 적은 글이 이 책이다. 애써 시공한 뒤 어긋나버린 유리창 모서리를 어떻게 수습했는지,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전망의 옥상 테라스를 왜 단칼에 포기했는지, 그다지 자랑스럽게 밝힐 만한 내용이 아닌 시행착오의 흔적까지 솔직하게 드러냈다.

집에 대한 이상(理想)은 오해와 착각으로 가득하다. 현실과의 괴리는 ‘돈에 대한 생각’ 때문이다. 서 교수는 “이 건물이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은 창문 트러스 등 중요한 부분에서 꼭 필요한 구조기술 전문 인력을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개의 건축주는 최고의 결과물을 요구하면서도 설계와 공사 비용은 무조건 깎아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늘 타일 등 마감재 줄눈 간격이 바닥이나 벽면에 정수로 딱 맞아떨어지도록 도면을 그린다. 하지만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는 현장이 대부분이다. 사소하다 여겨지는 디테일을 어긴 무성의한 시공을 두고 ‘자연스러움의 미학’ 운운하는 게 얼마나 무책임한 일인지, 들어가서 살아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세모난 집 짓기#서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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