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옛글은 고리타분? 조선시대의 파격을 엿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문장의 품격/안대회 지음/300쪽·1만5000원/휴머니스트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로다(Frailty, thy name is woman).”

누구든 한 번쯤 들어봄 직한 ‘햄릿’의 명대사다. 올해 셰익스피어 400주기를 맞아 ‘셰익스피어 4대 비극’(민음사)이 지난달 주간판매량 5위까지 올랐다. 400년 전 죽은 작가이지만 한국에서 그의 작품은 생명력을 잃지 않았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쓰인 ‘홍길동전’의 문장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정도밖에 떠오르지 않는 게 현실이다. 우리 고전은 왜 잊혀졌을까.

이 책은 자칫 따분한 인상을 주는 고전문학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한문학자로 인문학계 파워라이터인 저자는, ‘서얼들의 비통하고 우울한 소리’라며 정조가 폄하한 패관소품을 재평가하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허균 이용휴 박지원 등 7명의 문인은 상투적인 문체를 배격하고 자유로운 예술혼을 구가했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이를테면 이용휴가 제자에게 잠언으로 준 글이 그렇다. “수많은 성인은 지나가는 그림자니 나는 내게로 돌아가리라. 갓난아이와 대인은 그 마음이 본래 하나다. 하늘에 맹세하노라. 이 한 몸 다 마치도록 나 자신과 더불어 살겠노라.” 공자 왈 맹자 왈 하던 성리학 국가 조선에서 꽤나 혁명적인 발언이다. 성인들의 가르침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개성을 따르겠다는 파격 선언이다.

허균이 절친 이재영에게 준 척독(尺牘·짧은 편지)은 또 어떠한가. “밥상을 대할 때마다 얼굴에 땀이 흐르고 먹은 게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네. 서둘러 빨리 오게. 설령 이 일로 남들의 비방을 받을지라도, 나는 전혀 개의치 않을 것이네.” 작은 마을의 사또로 부임한 허균이 어려움에 처한 친구에게 보낸 글이다. 반역을 꿈꾼 허균의 호탕함과 겹쳐 요즘 식으로 “사회규범? 남들 시선? 그딴 거 아몰랑” 같은 태도가 느껴져 흥미롭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문장의 품격#안대회#햄릿#셰익스피어 4대 비극#고전문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