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미술은 따분’ 편견일랑 거둬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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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기획전 ‘사회 속 미술: 행복의 나라’
이땅에 새겨진 균열과 저항의 모습… 때론 진지하게 때론 위트있게 표현

정정엽 작가의 유채화 ‘식사준비’(1995년). 비닐봉지를 들고 시장 밖으로 뿔뿔이 빠져나오는 여성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정 씨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처한 현실과 노동 문제를 주제 삼아 녹두, 완두, 붉은 팥을 재료로 독특한 이미지를 선보여 왔다.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정정엽 작가의 유채화 ‘식사준비’(1995년). 비닐봉지를 들고 시장 밖으로 뿔뿔이 빠져나오는 여성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정 씨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처한 현실과 노동 문제를 주제 삼아 녹두, 완두, 붉은 팥을 재료로 독특한 이미지를 선보여 왔다.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서울 노원구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은 근처 주민이나 근무자가 아니면 찾아가기 용이한 곳이 아니다. 주변에서 연계해 즐길 대상도 마땅찮다. 7월 6일까지 열리는 기획전 ‘사회 속 미술: 행복의 나라’는 언뜻, 그 불리한 접근성을 상쇄할 매력을 지닌 전시로 보이지 않는다. 기획 키워드는 ‘민중미술’. 조금씩 더워지기 시작한 날씨를 감안하면 시간 내서 들여다보기 무겁게 여겨지는 주제다.

결론부터 밝히면 가볼 만하다. 비가 시원하게 퍼부은 15일 오후 찾아간 덕도 있겠지만, 물리적 배치나 내용의 짜임새 모두 엉성하지도 지루하지도 않다. 작가별로 모으거나 연대순으로 나열하며 관람객을 공부시키듯 정리하려 들지 않은 덕이다. 진지한 이야기를 품은 작품 곁에는 살짝 힘을 뺀 위트를 드러낸 작품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보는 이의 호흡을 적절하게 배려했다.

황재형 작가의 유채화 ‘탄광촌 가는 길’(1983년). 이달 초 제1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황 씨는 노동자의 삶을 구경꾼이 아닌 이웃의 시선으로 화폭에 옮겼다.
황재형 작가의 유채화 ‘탄광촌 가는 길’(1983년). 이달 초 제1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황 씨는 노동자의 삶을 구경꾼이 아닌 이웃의 시선으로 화폭에 옮겼다.
연초 종로구 가나인사아트센터의 ‘한국 현대미술의 눈과 정신: 리얼리즘의 복권’에 이어 이번에도 ‘민중미술’이라는 단어는 전시 표제 밖에 숨었다. 가나 측은 올해 민중미술 작품의 시장성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려 하는 중이다. 기혜경 북서울미술관 운영부장은 “전시 시기가 가나 측의 민중미술 붐업 움직임과 전혀 무관하게 정해졌다 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전시작품 70여 점 중 10점은 가나에서 기증받은 것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대동소이한 주제와 내용물로 얼마나 상이한 결과를 낼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가나의 전시가 ‘민중미술’이라는 단어를 슬그머니 감춘 식이었던 반면 북서울미술관은 그 의미를 현재의 시각에서 적극적으로 재해석해 대체재를 찾았다. 45년 전 발표된 한대수의 대표곡을 연상시키는 표제가 처음엔 조금 낯간지러운 인상을 주지만 출구에서 은근한 공감을 안긴다.

함경아 작가의 설치작품 ‘오데사의 계단’(2007년). 국가권력의 폭력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아냈다.
함경아 작가의 설치작품 ‘오데사의 계단’(2007년). 국가권력의 폭력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아냈다.
3부로 나뉜 공간마다 무게중심을 두고 주변에 상응하거나 대치하는 작품을 여러 겹 둘러 배치해 맥락의 확장을 꾀했다. 1전시실 중앙을 차지한 함경아 작가의 설치물 ‘오데사의 계단’ 재료는 전두환 전 대통령 사저를 수리하며 버려진 건축폐기물이다. 변기 골프공 TV 의자 등을 높다랗게 쌓은 나무계단에 띄엄띄엄 얹었다.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의 영화 ‘전함 포템킨’(1925년) 양민학살 장면에 등장한 배경을 작품 제목으로 차용했다. 주변을 둘러싼 작품에서는 이 땅에 새겨져 온 갖가지 균열과 저항의 양상을 읽을 수 있다.

2층 전시실 정윤석 작가의 12분 길이 영상작품 ‘별들의 고향’도 눈길을 끈다. 곁에 앉아 영상을 지켜보던 남성 관람객이 동행을 돌아보며 “야, 다른 나라 얘기 같다”고 말했다. 지존파, 삼풍백화점 붕괴 등 굵직한 사건 관련 이미지와 함께 중고교의 총검술 수업, ‘유신으로 번영하자’는 표어 등 이 나라의 생생한 현실이었던 과거 영상이 숨 가쁘게 교차한다.

기 부장은 “1980년대 리얼리즘 회화에 얽매이지 않고자 ‘민중미술’이라는 단어를 배제했다. 역사는 반복된다. 현재의 작가도 나름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발언한다. 미술을 매개로 삼은 사회운동은 지금도 당연히 유효하게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북서울미술관#사회 속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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