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으로 쌓아 만든 굽이굽이… 금강산이 손에 잡힐듯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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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관식 화백 40주기 추모 전시

1957년 그린 수묵담채화 ‘촌락풍일(村落豊日)’.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성북구립미술관 제공
1957년 그린 수묵담채화 ‘촌락풍일(村落豊日)’.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성북구립미술관 제공
서울에서 만나는 대개의 한국화 전시는 김홍도, 신윤복, 정선, 김정희 등 대표적인 작가의 그림을 선별해 그때그때 적절한 테마를 붙인 기획전이다. 낮은 식견 탓이겠지만 그런 전시를 보고 나오면 ‘배는 부른데 뭘 먹은 건가’와 비슷한 마음이 든다.

5월 22일까지 서울 성북구립미술관에서 여는 ‘소정 변관식’전은 근대 한국화 거장인 변 화백의 40주기를 추모하는 전시다. 1899년생인 변 화백은 1954년 성북구 동선동에 거처를 마련한 뒤 1976년 별세할 때까지 그 지역에서 작업을 이어갔다.

그는 30대 후반부터 금강산을 여러 차례 찾아 그 경험을 창작의 원천으로 삼으며 자신만의 진경산수화를 그려 나갔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20점은 ‘외금강 삼선암 추색’(1966년) ‘촌락풍일’(1957년) 등 성북구에 머물며 그린 금강산 산수화들이다.

“어떤 이는 내 산수화가 금강산뿐이라고 하지만 사실 금강산의 장엄미는 내가 평생 그려도 다 옮길 수 없는 대상이다. 나는 어느 한 곳을 그릴 때마다 산세는 물론이고 바위의 생김과 물이 흐르는 방향, 물살의 세기까지 기억하며 그린다.”

전시실에 적힌 작가의 말이 결코 허언(虛言)이 아님은 그림이 증명한다. 몸과 마음을 뒤흔든 강렬한 경험의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 그곳의 바람과 빛을 재생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 바위와 나무가 흘러내려 물보라를 일으키는 ‘흐름’의 흔적이 그림 곳곳에 면면하다.

붓의 터치를 쌓아 형성한 흐름의 굽이마다 꼬장꼬장한 작가의 기백이 배어 있다. 전체적인 흐름이 어느 한 구석에서 멈추지 않도록 견지하면서도 디테일 하나하나에 소홀하지 않았다. 1.3m 너비의 ‘촌락풍일’은 멀찍이서 보면 그저 고즈넉한 마을 원경이다. 그림 왼쪽 하단 논두렁을 걷는 사내와 아낙의 몸짓이 눈길을 끈다. 눈, 코, 입은 없지만 동작을 어색하게 만드는 불필요한 터치가 한 톨도 보이지 않는다. 귀를 기울이면 앞서 가는 사내의 무심한 보폭을 탓하는 아낙의 고시랑거림이 들릴 듯하다. 02-6925-5011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변관식 화백#40주기#추모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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