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임희윤]노래와 음악, 뭘 좋아하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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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윤 문화부 기자
임희윤 문화부 기자
음반시장은 죽어간다는데 TV만 켜면 음방(음악방송)이 물결친다. 어떻게 된 걸까.

원래 인기 있던 ‘복면가왕’ ‘히든싱어’ ‘너의 목소리가 보여’ ‘투유 프로젝트-슈가맨’ ‘불후의 명곡’에 더해 요 며칠 새 ‘판타스틱 듀오’ ‘보컬 전쟁: 신의 목소리’, ‘듀엣가요제’가 앞다퉈 새로 방송을 시작했다. 방송가에선 “쿡방(요리 프로), 먹방(탐식 프로), 음방은 만들면 반드시 (대중에) 먹힌다”고들 한다.

근데 요즘 쓰이는 ‘음방’이란 말엔 ‘가요무대’ ‘뮤직뱅크’ ‘열린음악회’ ‘EBS 스페이스 공감’은 포함되지 않는다. 어, 생각해보니 음악방송은 원래 많았다. 저기 저 위에 적은 프로그램들은 좀더 차갑게 말하면 음방이 아니라 노방(노래 방송), 또는 가방(가창 방송)이다. 음악 전반, 연주자보다는 가수, 가창이란 행위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다. 또 추리나 대결 같은 원초적인 예능 요소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가면을 쓰고 부르면 뜨고 벗고 부르면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는 씁쓸한 말이 요즘 가요계 통설로 자리 잡을 정도다.

우린 왜 ‘노방’에 열광할까. 노래는 동물계에서 자주 구애의 매개로 쓰인다. 그러니 가창에 관한 끝없는 관심은 생존을 위한 탐식 못잖게 중요한 인간의 번식 본능과 연결되는 건지도 모른다. 불변의 인간 관심사이니 쿡방, 먹방만큼 노방에 주목할 만하다. 음악 전반에 대한 관심이 줄어도 인간의 목소리로 부르는 가창에 대한 관심은 꺼지지 않는다.

가창은 매일 쓰는 언어와도 연결돼 있다. 통하면서도 그것을 자주 넘어선다. ‘사랑해’, 세 음절을 어떻게 잘 표현할까에 관해 고심하는 과정에서 인류 역사의 대문호들이 수많은 역작과 장편을 써냈지만, ‘파#-파#-파, 파-파-레#’(부활 ‘비와 당신의 이야기’)나 ‘시-솔#-파#’(이승철 ‘오직 너뿐인 나를’)의 몇 음은 어마어마한 파괴력으로 무뚝뚝한 활자를 꿰뚫고 나와 대중의 가슴을 후벼 팠다. ‘노방(노래 방송)’이 ‘노잼’(재미없음)일 확률은 낮다.

‘노방’ 열풍이 한편으론 씁쓸하다. 음악은 가창보다 훨씬 크다. 기껏해야 3옥타브쯤 되는 폭을 지닌 인간 목소리가 지닌 한계 너머에 더 큰 음악의 영토가 있다. 펄떡대는 타악기의 생동, 둔중하게 가슴을 쳐오는 베이스의 울림, 인간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다양한 악기와 전자음들의 아우성이 음악이란 코끼리의 생김새 대부분을 이룬다.

자기가 좋아하는 게 왜 대단한지 설명하기 바쁜 음악 꼰대라서 그런지 몰라도 노래 못잖게 악기 연주, 디제잉, 컴퓨터 편곡에 열광하고 빠져드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가창 위주, 주선율 악기 위주로 된 학교 음악 교육과정부터 다시 생각해보면 어떨까. 아이들이 심사위원님들 앞에서 노래로 꾸중 듣고 닭똥 같은 눈물을 떨어뜨리는 모습 대신 자기가 만든 음악으로 기존 예술의 아성을 깨부수는 장면을 더 보고 싶다. 노래만 불러서는 할 수 없는 대단한 일들이 세상에 많다.
 
임희윤 문화부 기자 imi@donga.com
#음악방송#노래방송#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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