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원의 옛글에 비추다]해야 할 일과 말아야 할 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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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군자가 입신을 할 때에는
옳은지 옳지 않은지를 따져야지
버려질지 버려지지 않을지를 따져서는 안 된다

士君子立身 當論其是不是 不當問其棄不棄
(사군자입신 당론기시불시 부당문기기불기)

―기정진 ‘노사집(蘆沙集)’

옛말에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몸을 손상시키지 않고 온전하게 보전하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고, 출세하여 세상에 이름을 떨쳐 부모님을 드러나게 해드리는 것이 효도의 끝마침이라 했다. 출세하여 세상에 이름을 떨치는 것을 ‘입신양명(立身揚名)’이라고 하는데, 옛날의 선비들도 이를 효도의 끝마침으로 여길 만큼 중시하였다. 이름을 떨치는 ‘양명’을 위해서는 먼저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자리로 나가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입신’이고, 요샛말로 하면 출세가 된다.

위는 조선 후기의 선비 기정진(奇正鎭)이 입신할 때의 자세를 제시한 말이다. 사람들에게 버림받을 것을 걱정하는 어떤 이에게 전한 편지의 내용이다. 옳은 일이면 하고, 그렇지 않으면 하지 않으면 그만이니, 나의 행동이 혹시 권력자의 눈에 거슬려 내쳐지지 않을까는 생각지 말라는 것이다. 입신양명은 효도의 끝마침이니 옛사람들의 세상살이에 있어 종국의 목표일 수도 있지만 그 길이 옳지 않다면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옳은 일이 꼭 출세로 연결되지는 않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출세와 반대의 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옳은 일이라면 출세와는 상관없이 행해야 할 것이다.

중국 송나라의 문장가인 소식(蘇軾)이 지은 범진(范鎭)의 묘지명에도 비슷한 글이 있다. ‘일은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져야지, 어려운지 쉬운지를 따져서는 안 된다(事當論其是非 不當問其難易).’ 범진이 임금에게 여러 차례 상소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주위에서는 형세상 어렵다며 그를 만류하였지만, 그는 다시 상소를 올리며 자신의 뜻을 그렇게 말했다.

우리는 일을 하면서 선택의 상황에 직면할 때가 많다.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정해야 하고, 또 다양한 방안 중 어떤 것으로 정해야 할지를 고민한다. 쉬운 길을 택해야 할까, 아니면 남이 알아주는 길을 택해야 할까. 위의 말들은 이러한 기로에 섰을 때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기정진(1798∼1879)은 본관은 행주(幸州)이고, 호는 노사(蘆沙)다.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로 여러 차례 관직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하고 학문에 전념했다.

이정원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
#기정진#노사집#선택#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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