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이 책, 이 저자]40년 번역의 길 이끈건… 내 글쓰기의 두려움, 그리고 共感의 욕망이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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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영의 번역수첩/김화영 지음/548쪽·1만8000원·문학동네

자택 서재에서 자신이 번역한 책들과 함께한 김화영 교수. 그는 번역에 대해 “위대한 작품을 정독하는 가장 유별난 방식이 아닐까”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자택 서재에서 자신이 번역한 책들과 함께한 김화영 교수. 그는 번역에 대해 “위대한 작품을 정독하는 가장 유별난 방식이 아닐까”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김화영 옮김’이 아니라 ‘김화영 지음’이다. 그 내용엔 ‘옮긴이 김화영’의 내면이 담겨 있다.

‘김화영의 번역수첩’은 프랑스 문학작품에 대한 정교하고 유려한 번역으로 유명한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가 들려주는 번역 이야기다. 그간의 역자 후기를 모은 책이지만 하나하나가 번역에 관한 결 고운 산문이요 프랑스문학 입문서다. 1974년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잃어버린 얼굴’을 번역한 것을 시작으로 그는 올해로 번역 인생 40년을 넘겼다. 지금까지 번역한 책이 모두 100여 권이 넘는다. 3일 서울 성동구 옥수동의 자택에서 만난 김 교수에게 왜 번역에 몰두했는지부터 물었다. “내 글쓰기의 어려움 때문”이라고 그는 답했다. “내 글을 쓰려면 첫 문장을 얻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생각이 익어서 글로 나오길 기다려야 한다. 그래도 첫 문장이 마뜩잖을 때가 적지 않다. 그런데 번역은? 노력만 하면 된다. 기다리지 않고 첫 줄을 시작할 수 있다.” 어쩌면 번역을 하면서 자신의 글쓰기에 알리바이를 만들고 싶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는 겸허하게 밝혔다. 특유의 부지런함에 자신이 읽은 프랑스문학을 더 많은 독자와 나누고 싶은 마음도 컸음은 물론이다.

김 교수의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 덕분에 우리 독자들은 아름다운 프랑스문학을 만나게 됐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파트리크 모디아노와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 미셸 투르니에, 크리스토프 바타유 등 유명한 프랑스 문인들의 작품이 그를 통해 소개됐다. 한국 독자들에게 잘 알려진 장 그르니에의 에세이 ‘섬’을 처음으로 한국어로 옮긴 이도 김 교수다.

“1970년대 말에 ‘섬’을 번역해서 책을 내보려고 민음사 박맹호 당시 대표를 찾았다. 박 대표가 우리 과 선배다(서울대 불문과). ‘유명한 작가냐?’고 묻더라. 그르니에는 그때 한국에선 무명 작가였다. 출판을 거절당한 뒤 문예지에 ‘섬’을 번역해 연재했다. 몇 달 뒤 박 대표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 연재물이 그때 말했던 작가의 것이냐고. 빨리 갖고 오라고 하더라.” 베스트셀러가 된 ‘섬’의 탄생 비화다.

‘아름다운 번역’의 비결을 묻자 김 교수가 손사래를 치는 바람에, 번역 과정을 들려 달라고 다시 물었다. “텍스트를 이해하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대개 텍스트를 소리 내서 읽는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텍스트의 톤(tone·어조)이 건조한지, 부드러운지, 매끄러운지, 껄끄러운지, 이런 걸 이해하고 옮기는 문체에도 살려야 한다.”

그는 무엇보다 출판사의 청탁이 아니라 자신이 작품을 고르는 게 ‘엄격한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내가 번역 소개하기로 선택한 책과 그 저자의 목록만으로도 나의 ‘개성’의 한 표현이 되도록 노력했다”는 것이다.

특히 힘들었던 번역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과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였다. 너무나 잘 알려진 이들 고전은 “고전이어서 자신의 실력을 최대한 발휘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었다. 카뮈의 ‘이방인’ 번역은 세 번, ‘페스트’는 두 번 고쳤다. “시대에 맞는 언어로 다듬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프랑스문학을 번역하면서 프랑스 문단과도 교류해 온 그이다. 김 교수는 “개성 있는 독자들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우리 사회의 독서 경향에 대한 바람을 밝혔다. 김 교수는 “남이 읽는다고 무작정 따라 읽기보다는 자신만의 기호를 갖고 책을 골라 읽길 기대한다”면서 “그게 문화의 다양성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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