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삶이란 저무는 해처럼 고독한 그림자를 드리우는 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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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 무렵/황석영 지음/200쪽·1만1500원·문학동네

황석영 씨의 새 장편소설 ‘해질 무렵’에는 늙음과 젊음이 교차한다. 60대의 부유한 건축가 남자와 서른을 바라보는 여성 연극 연출가가 소설을 끌어가는 두 사람이다. 그런데 이 두 사람에게는 나이마다 응당 지녀야 할 미덕이 없다. 박민우는 가정이 무너진 지 오래여서 노년이 가질 법한 마음의 여유가 없다. 정우희는 열정과 활기로 가득 차야 할 청춘에 월세 내기도 힘든 근근함으로 지쳐 있다.

작가는 노년 사내의 먹먹한 심리를 그려내면서 오늘날 젊은이들의 고단한 현실에 대한 투시도 놓치지 않는다. 박민우와 정우희의 이야기를 번갈아 들려주면서 작가는 과거와 현재를 섬세하게 직조한다.

사회생활에서 성공했음에도 늘 마음은 헛헛했던 박민우는 어느 날 느닷없이 연락이 온 첫사랑을 통해 과거를 돌아보기 시작한다. 그가 살았던 산동네는 집집마다 유리창 대신 널빤지 문이 달려 있었고 많은 집들이 공중수도와 공중변소를 썼던 곳이었다. 민우는 사내애들끼리 주먹 싸움이 벌어지곤 하던 날들, 그 가운데서 피어나던 첫사랑 차순아와의 추억을 떠올린다. 정우희가 처한 현실은 대조적이다. 풍요로운 21세기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그는 음식점과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뛰면서 관객이 거의 들지 않는 연극 무대에 매달린다.

황석영 씨는 작가의 말에서 “개인의 회한과 사회의 회한은 함께 흔적을 남긴다”면서 “지난 세대의 과거는 업보가 되어 젊은 세대의 현재를 이루고 있다”고 밝혔다. 소설에서 박민우가 산동네와 차순아에게서 벗어나고자 앞만 보고 달려왔던 지난날은 현재의 차순아와 그의 아들 ‘검은 셔츠’, 아들의 친구 정우희의 암울한 현실에까지 연결된다. 열심히 생활하는 것처럼 보였던 검은 셔츠가 지쳐 목숨을 버리는 대목에 이르면 살아간다는 것의 척박함이 와 닿아 숙연해진다. ‘해질 무렵’의 이야기는 소설 속 인물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사연들로 보이지만 실제론 우리 시대가 당면한 고민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해질 무렵#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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