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가족이 울타리가 되는 삶… 오늘도 행복이 자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9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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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시골/김선영 글, 사진/240쪽·1만5000원·마루비
도시 살다 귀촌 생활 선택한 부부… 느리지만 진솔한 삶이 주는 감동
명절 맞아 가족의 의미 깨닫게 해

점점 얼굴이 보름달을 닮아가는 아이는 잠시 뭔가 읽어주기만 하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표정으로 통통한 손을 가슴에 올리고 잔다. 저자가 2014년 10월 23일 일기에 덧붙인 둘째의 사진이다. 마루비 제공
점점 얼굴이 보름달을 닮아가는 아이는 잠시 뭔가 읽어주기만 하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표정으로 통통한 손을 가슴에 올리고 잔다. 저자가 2014년 10월 23일 일기에 덧붙인 둘째의 사진이다. 마루비 제공
2012년 8월 어느 날. 저자와 가족은 경북 안동의 시골로 이사한다. 일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에 나오는 그 집처럼 검댕이 도깨비가 나올 것 같은 집, 300년 된 고택이다.

처음에는 망설였다. 둘러본 고택은 바람이 불면 마루가 삐걱거리고 창호지문은 조금만 건드려도 바스락거리며 부서질 것 같았다. 집을 나오려는데 아이가 마당 풀밭에서 똥을 누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툇마루에 앉아 있자니 하늘은 정지화면처럼 푸르고 나른한 봄볕이 발끝에 머물렀다. 도시에 돌아와 보니 소중한 물건을 두고 온 것처럼 뭉클한 감정에 휩싸여 어쩔 수 없이 그 집으로 이사한다. 집 이름은 ‘흙 토(土)’, ‘햇빛 토(㫦)’, ‘물결 로’를 합쳐 ‘토토로’로 지었다.

책은 저자가 초보 귀촌 생활의 2년 남짓한 세월을 담은 일기다. 페이지마다 담긴 사진만 봐도 일상이 생생하게 떠오르고 담백한 글솜씨에 마음이 움직인다.

300년 된 경북 안동의 고택을 새 보금자리로 삼은 네 식구.
300년 된 경북 안동의 고택을 새 보금자리로 삼은 네 식구.
시골의 일과는 오전 5시부터 오후 5시 반까지다. 남편과 함께 집 바로 옆 가구공방에서 일을 마치고 저녁을 먹으면 9시에 스르르 잠이 온다. 도시에서 즐겼던 크레마(커피 위에 뜨는 갈색 크림) 가득한 에스프레소 대신 감기 예방에 좋은 생강차로 기호를 달랜다. 그래도 행복하다. 당연하게 여겼던 가족, 집, 풍경의 소중함을 또렷하게 해준 시골 생활이다.

‘끝없이 고군분투하며 살아야 뒤처지지 않는다는 내 마음속의 불안은 사실 내가 교육받아온 강박이었음을 깨닫는다. 이리떼는 없고 흰 구름뿐.’

잃은 것과 얻은 것이 명확하다. 남편은 40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즐기던 스키니진과 퇴근길 버스정류장 앞 골뱅이무침 포장을 놓아주었다. 그 대신 작업용 솜바지와 흙 묻은 고무털신을 얻었다. 저자는 쇼핑센터와 공원산책을 놓아주고 작업용 목장갑과 툇마루 사색을 얻었다. 큰아이는 단짝친구를 놓아주고 닭 두 마리와 밤하늘 별빛을 얻었다.

부부의 사랑도 웅숭깊어졌다. 도시에서는 괜한 우월감에 사로잡혀 서로를 바라봤지만, 이곳에서는 풍선바람 빠지듯 그 허상을 버렸다. 아무 양념 없이 서로를 바라보는 처절한 과정을 거쳐, 부부는 ‘사랑하지 않으면 멈춰선 이곳은 지옥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추석을 맞아 가족과 집의 기억을 향해 가는 이들이 볼 만한 책이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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