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자의 생각돋보기]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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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연평해전’ 포스터.
영화 ‘연평해전’ 포스터.
영화 ‘연평해전’을 보았다.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보고 싶은 영화는 아니었다. 아이들과 점심을 함께 먹은 비 오는 일요일, 딱히 할 일은 없고, 식당 바로 옆이 영화관이고, ‘연평해전’을 보자는 젊은 아이들의 생각이 가상해 그냥 보았다. 그러나 보기를 잘했다. 홀을 가득 메운 관람객들이 거의 모두 울었고, 나도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나왔다.

희미하게 잊혀졌던 사건이 다시 생생하게 살아났다. 한일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6월 29일 북한군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했고, 당시 좌파 정권이 미리 정해 놓은 ‘선제사격 금지’, ‘기동 차단’이라는 교전규칙을 따르다가 젊은 나이의 해군 장병 6명이 아깝게 희생되었다. 빨간 티셔츠의 ‘붉은악마’ 물결이 광화문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을 메우고, 서울의 거리가 함성으로 들썩이며 온통 축제 분위기였던 바로 그 순간, 서해의 망망대해에서는 배 한 척이 아무런 지원군도 없이 북한군의 기습 공격 앞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전투가 벌어진 다음 날 김대중 대통령은 한일 월드컵 결승전을 참관하러 일본으로 떠났고, 일본에서 돌아온 다음 날 전사자의 장례식이 열렸지만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이한동 국무총리, 김동신 국방부 장관, 이남신 합참의장 그 누구도 참석하지 않았다. 나라를 지키다 전사한 군인들을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은 싸늘하게 외면했고, 국토를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던진 용사들에게 정부는 예를 갖추지 않았으며, 최고 군 수뇌부는 국민을 위해 희생한 하급 장병들 가족의 아픔을 위로하지 않았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영화도 이 부분은 애써 모른 척하고 지나갔다. 영화 개봉 전 TV 인터뷰에 나온 감독은 이 영화가 반공 영화냐는 질문에 펄쩍 뛰며 부인했다. 이 영화는 오로지 인간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반공이라는 말이 주홍글씨라도 되는 듯한 사회,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금기로 여겨지는 사회, 이것이 우리 사회, 특히 문화계의 현상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순간이었다. 감독은 유일하게 현실과 다르게 박동혁 병장의 어머니를 말 못하는 인물로 설정했는데, 그 답답한 울부짖음이 혹시 마음대로 말하지 못하는 영화감독의 내면을 보여주는 알레고리가 아닐까.

집에 와 나는 모윤숙의 장시(長詩)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를 다시 읽어 보았다. 시의 몇 줄을 발췌하는 것으로 꽃다운 장병들의 죽음에 대한 애도를 대신하려 한다.

‘산 옆 외따른 골짜기에/혼자 누운 국군을 본다./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누런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지/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구나

나는 죽었노라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대한민국의 아들로 숨을 마치었노라

내게는 어머니 아버지 귀여운 동생들도 있노라/어여삐 사랑하는 소녀도 있었노라/내 청춘은 봉오리지어 가까운 내 사람들과/이 땅에 피어 살고 싶었었나니

아무도 나의 죽음을 아는 이는 없으리라/그러나 나의 조국 나의 사랑이여!

바람이여! 저 이름 모를 새들이여! 그대들이 지나는 어느 길 위에서나/고생하는 내 나라의 동포를 만나거든/부디 일러 다오,/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고’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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