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매거진]백화점 안의 이발소, 진정한 면도가 시작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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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백화점 ‘클럽모나코’에 바버숍이?

고객의 머리카락을 자른 후 최종적인 상태를 지켜보는 박준석 바버(이발사)의 눈빛이 날카롭다. 이발과 면도에 1시간 이상 걸릴 정도의 작업이지만 바버의 꼼꼼한 솜씨를 지켜보노라면 시간이 금세 흐른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고객의 머리카락을 자른 후 최종적인 상태를 지켜보는 박준석 바버(이발사)의 눈빛이 날카롭다. 이발과 면도에 1시간 이상 걸릴 정도의 작업이지만 바버의 꼼꼼한 솜씨를 지켜보노라면 시간이 금세 흐른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얼굴에 거품을 바르고 나자 사각사각 면도 소리만 들렸다. 차가운 날이 하얀 비누거품을 헤집으며 춤을 췄다. 거뭇한 수염이 미세수술을 한 것처럼 잘려 나갔다. 흥청망청 돈을 써대던 1920년대 미국, ‘알 카포네’ 같은 마피아 두목이 앉았을 듯한 고풍스러운 이발 의자는 180도 젖혀졌다. 보이는 것은 하얀 조명, 그리고 면도칼을 들고 내 수염에 집중하는 바버(Barber·이발사)의 눈빛뿐이다. 기자의 첫 ‘진정한’ 면도는 그렇게 시작됐다.

남자는 매일 아침 면도라는 의식(儀式)을 진행한다. 지금은 세수하기 전 화장실에서 각자 해결하는 이 의식은, 1990년대 남녀공용 헤어숍(이라고 쓰지만 대부분은 동네 미장원)이 대한민국을 점령하기 전까지 상당 부분 이발사와 공유하는 것이었다. 동네 이발소들이 잇따라 문을 닫으며 면도는 외로운 행동이 됐다. 최근 복고풍의 고급 이발소가 ‘바버숍(Barbershop)’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다는 소식에 찾아가 봤다.

3일 오전 기자가 방문한 바버숍에서는 ‘안내방송’이 들렸다. “오늘도 저희 백화점을 찾아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고객 여러분께서는….” 이곳은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5층, 남성복 매장인 ‘클럽모나코’ 안에 들어선 이발소다. 롯데백화점 측은 “세상에서 처음으로 백화점 안에 들어선 이발소”라고 설명했다. 이번 체험도 거기서 시작됐다.

인테리어는 ‘복고(復古)’ 그 자체였다. 32m² 규모의 클럽모나코 매장 안에 이발 의자 2개와 머리를 감을 수 있는 세면대가 설치돼 있다. 바닥과 벽의 네모반듯한 흰 타일부터 이발 전에 가지런히 정리된 바리캉과 가위, 빗, 면도기 등 이발용품까지 30년 전 ‘고급 이발소’가 연상됐다. 정확하게는 기자가 연상한 30년 전 고급 이발소의 모습이다.

이발소의 상징인 흰 가운을 입은 이발사 아저씨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 대신 청바지에 말끔한 셔츠를 소매까지 걷어붙인 젊고 건장한 청년이 나타났다. 대한민국에 새로이 하나 둘 퍼지기 시작한 바버숍들은 그렇게 젊어지고 있었다.

경력 4년의 박준석 바버(이발사·25)는 말수가 적었다. 사실 그는 기자에게 별다른 ‘선택권’을 주지도 않았다. 3주 정도 지저분하게 기른 기자의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보고 “옆 부분을 단정하게 잘라보시죠”라고 선언문을 읽듯 말했다. 단정하게 커트한 후 포마드를 바른 그의 헤어스타일을 보고 “싫다”고 거부하기는 어려웠다.

약 1시간 30분 후 기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포마드를 바른 ‘남자의 머리’를 하게 됐다. 기자가 체험한 것은 이발과 면도 두 가지. 모든 과정은 유전공학자의 줄기세포 배양 과정처럼 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꼼꼼하게 진행됐다. 비용은 이발 3만5000원, 면도 3만 원.

이 기사를 읽고 있는 독자 중 상당수는 “비싸다”라고 느낄 것이다. 혹은 “내가 가는 미장원하고 가격 차이가 안 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바버숍에 한번쯤 가 보는 ‘작은 사치’를 누려 보길 권유한다. 이발과 면도라는 과정이 사실은 대단히 남성적이고, 문화적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에서야 깨달은 것이지만 남자가 동네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는 건 어쩌면 ‘이발’이 아닐 수도 있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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