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행복한 동화의 뒷이야기… 현실의 고통·상처 들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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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날 죽였고, 아빠가 날 먹었네/조이스 캐럴 오츠 등 지음·
케이트 번하이머 엮음·서창렬 옮김/824쪽·2만3800원·현대문학

“그래서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작가들은 이 ‘해피 엔드’를 비튼다. 행복한 동화의 뒷얘기를 들추고, 동화의 모티브에 상상력을 덧입혀 현실의 고통과 상처를 찾아낸다. 가령 마이클 커닝햄의 ‘백조왕자’가 그렇다. 안데르센의 동화 ‘백조왕자’의 ‘다음 이야기’다. 백조로 변한 왕자 오빠들을 위해 공주 동생은 쐐기풀로 옷을 짓고, 공주가 만든 옷을 입은 백조들은 사람으로 변한다. 다만 시간이 부족해 막내오빠의 옷은 다 만들지 못했고, 그 때문에 오빠의 한쪽 날개는 팔로 바뀌지 못했다.

그래서 그 다음은? 커닝햄은 한쪽 팔이 날개인 막내왕자의 쓸쓸한 나날들을 적는다. 형들은 그를 보면 죄책감이 드는지라 그가 주위에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린 조카들은 그를 보면 키득거린다. 이제 그는 중년이 되었지만 비꼬고 빈정거리며 세상살이에 지쳐 있다. 아마도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겉으론 신랄하지만 내면엔 깊은 상처가 있는 외로운 사람들에 대한 상징이다.

조이스 캐럴 오츠의 ‘푸른 수염의 연인’은 또 어떤가. 샤를 페로의 ‘푸른 수염’을 비튼 오츠의 얘기에선 원래의 아름답고 순진한 신부가 아닌, 영악하고 약삭빠른 여자가 등장한다. 여자는 원래 이야기의 신부들처럼 남편의 말을 거역하는 게 아니라 푸른 수염의 사내에게 완전하게 복종하고 대를 잇는 아이를 갖는다. 오츠의 ‘푸른 수염’ 패러디에서는 사랑과 낭만이 거세되고 냉소와 계산이 그 자리를 채운다. 킴 아도니지오의 ‘그 후로도 오랫동안’에서 식당에서 일하는 일곱 난쟁이들은 자신들을 구원해줄 백설공주를 기다리지만, 이야기가 마치도록 공주는 오지 않는다. 아름답고 때로 기이한 판타지가 현대인의 우울한 이면을 들추는 소설로 바뀌는 순간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엄마가 날 죽였고 아빠가 날 먹었네#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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