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매거진]“샴페인은 Excellence… 맛보면서 마법 같은 순간을 즐기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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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샴페인 ‘듀발 르로아’의 카롤 르루아 대표

프랑스 샴페인 회사인 ‘듀발 르로아’의 카롤 르루아 대표가 최근 방한해 샴페인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남편이 세상을 뜬 1991년부터 듀발 르로아를 경영하면서 매출액을 두 배이상으로 성장시켰다. “시아버지와 남편으로부터 열정을 물려받았다”는 그는 열정을 상징하는 빨강색 옷을 즐겨 입는다. 듀발 르로아 제공
프랑스 샴페인 회사인 ‘듀발 르로아’의 카롤 르루아 대표가 최근 방한해 샴페인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남편이 세상을 뜬 1991년부터 듀발 르로아를 경영하면서 매출액을 두 배이상으로 성장시켰다. “시아버지와 남편으로부터 열정을 물려받았다”는 그는 열정을 상징하는 빨강색 옷을 즐겨 입는다. 듀발 르로아 제공
남편은 6대째 내려오는 프랑스 샴페인 회사를 경영하고 있었다. 아내는 사업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일손이 딸리는 포도 수확기에 일꾼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 1991년 남편이 지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뜨자 회사에 위기가 찾아왔다. 주변에서는 회사가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간다고 수군거렸다. 하지만 집안 대대로 내려온 회사를 뺏길 수는 없었다. 아내는 마을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선언했다.

“앞으로 이 회사는 제가 경영할 겁니다. 누구에게도 회사를 팔 생각이 없습니다.”

이것은 프랑스 샴페인업체인 ‘듀발 르로아’의 카롤 르루아 대표의 이야기다. 평범한 주부였던 그는 남편의 뒤를 이어 회사를 맡아 당시 2500만 유로였던 매출액을 6000만 유로로 늘리는 등 회사를 두 배 이상으로 키워냈다. 르루아 대표는 이런 능력을 인정받아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프랑스 샴페인 사업자들의 연합체인 ‘AVC’(Association Viticole Champenoise) 의장을 지내기도 했다. 최근 방한한 르루아 대표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만나봤다.

그는 1991년 듀발 르로아 대표로 취임했던 때 눈앞이 깜깜했다고 했다. 그러나 경쟁 회사들과 다르게 사업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겠다는 생각만은 확실했다. 르루아 대표는 취임 즉시 품질관리자라는 새로운 자리를 만들었다. 가내 수공업 형태로 만들던 샴페인의 제조 공정을 첨단화하고 신뢰도를 높여 매출액을 늘리겠다는 의도에서였다.

단기적인 목표는 국제표준(ISO) 9002라는 인증을 받는 것이었다. 샴페인의 품질과 생산, 애프터서비스 등에 이르는 공정에서 일정한 기준을 충족시켜야 했다. 매일 오전 7시에 출근했고 퇴근 시간은 따로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남편이 세상을 뜨기 전까지 샴페인 실무 지식이 전무했지만 인증 요건을 맞추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면서 그는 실무를 속속들이 알게 됐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밀려오는 슬픔을 어쩔 수 없었어요. 하지만 어린 세 아들에게 온전하게 샴페인 회사를 물려주려면 회사를 잘 키워 놓아야 했습니다. 미래를 생각하면서 일에서 위안을 받았어요. 우울증, 상실감을 일로 극복했답니다.”

이런 노력은 꼭 3년 뒤인 1994년 빛을 발했다. 듀발 르로아가 ISO 인증을 받은 첫 샴페인 회사가 된 것이다. 이후 해외에서 듀발 르로아의 샴페인을 사고 싶다는 수입업자들의 요청이 이어졌다. 당시만 해도 듀발 르로아는 프랑스의 지역 슈퍼마켓에 샴페인을 파는 게 전부였던 내수 기업이었지만 ISO 인증을 받은 뒤 본격적으로 수출을 시작해 지금은 전 세계 70여 개국에 샴페인을 수출하고 있다.

사업이 궤도에 오르자 르루아 대표는 샴페인의 개념도 바꾸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샴페인은 식전주(aperitif)로 마시는 술이었다. 그러나 요리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샴페인을 요리와 곁들여 마시는 ‘미식주(gastronomy champagne)’로 보고자 했다.

이를 위해 셰프와 소믈리에를 일종의 홍보대사(brand ambassador)로 활용했다. 소믈리에, 셰프, 파티셰 등 식음료 전문가들은 어떤 음식과 샴페인이 좋은 ‘궁합(mariage)’을 갖고 있는지를 널리 알리는 역할을 했다. 르루아 대표는 또 아예 소믈리에를 회사에 채용해서 소비자들이 어떤 맛의 샴페인을 원하는지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샴페인은 기포가 많기 때문에, 기름진 육류를 먹을 때 마시면 느끼함과 더부룩함을 줄여 줄 수 있어요. 샴페인 재료로 많이 쓰는 포도 품종인 피노누아의 단단하고 묵직한 바디감은 돼지고기의 누린내를 잡아줍니다. 단맛의 샴페인은 한과와도 궁합이 맞을 수 있어요.”

이런 노력은 좋은 결실로 이어졌다. 르루아 대표는 현재 미슐랭 스타 등급을 받은 식당을 비롯해 세계 각지의 고급 레스토랑 250여 곳에 샴페인을 납품하고 있다. 또 프랑스 소믈리에 연합에 가입해 젊은 소믈리에를 발굴하는 ‘듀발-르로아 트로피’라는 상을 만들고, 프랑스의 올해의 디저트 대회(Dessert of the Year Competition)에서 ‘카롤 듀발-르로아 트로피’를 주는 등 음식과 샴페인의 궁합을 강조하는 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있다.

회사가 정상 궤도에 오르자 르루아 대표는 남편과 추진했던 ‘미완성 프로젝트’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남편과 ‘언젠가 마법 같은 순간을 맛볼 수 있는 샴페인을 만들어보자’고 약속했었어요. 포도 작황이 좋았던 해에 최고급인 그랑크뤼급 포도밭에서 생산된 포도로 샴페인을 만들었어요.”

그는 이렇게 해서 태어난 샴페인에 ‘팜므 드 샹파뉴(Femme de Champagne)’라는 이름을 붙였다. 르루아 대표 자신이 여성인 데다 샴페인의 우아하고 섬세한 맛이 여성과 같다는 뜻에서였다. 또 병의 목 부분에는 세 아들인 쥘리앵과 샤를, 루이의 이니셜을 새겼다. 현재 세 아들은 모두 듀발 르로아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쥘리앵은 경영 총괄을, 샤를은 커뮤니케이션을, 루이는 대외 업무를 각각 맡고 있다.

마지막으로 르루아 대표에게 샴페인을 한 단어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최고의 품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즐길 수 있기 때문에, 탁월함(Excellence)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샴페인은 부자만을 위한 게 아니기 때문에 럭셔리라고 하고 싶진 않군요. 샴페인은 결혼이나 승진 등 좋은 일이 있을 때 마시는 술이지요. 탁월함을 맛보면서 마법과 같은 순간을 즐기세요.”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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