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수용소 ‘미친 포로원정대’의 코믹한 케냐 산 등반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9일 15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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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포로원정대
펠리체 베누치 지음·윤석영 옮김
424쪽·1만2500원·박하

“여기서 탈출해서 저 산에 올라보고 싶다는 생각, 혹시 해본 적 없어?”

미친 짓은 이렇게 시작됐다. 사방이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지루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푸른 빛 빙하를 두른 5200m 높이의 산을 문득 봤을 때 말이다. 여기서 나가 저 산을 오르자, 그리고 다시 돌아오자.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산을 오르려면 일단 포로수용소를 탈출해야 한다는 것, 운 좋게 무사히 탈출한다 해도 수용소 밖은 맹수들이 우글대는 아프리카라는 것. 산악 장비를 직접 만들어야 한다든지, 식량을 준비해야 한다든지 하는 건 ‘사소한’ 과제다. 이 모험에 아이디어를 낸 저자와 동참하겠다는 동료가 둘 더해졌다. ‘미친 포로원정대’가 꾸려진 것이다.

이 책은 실제상황이다. 저자는 이탈리아 식민지청 공무원으로 에디오피아 아디스아바바로 파견됐다 1941년 연합군이 이 지역을 점령하면서 영국령 케냐 제354포로수용소의 전쟁포로가 됐다. 단조로운 수용소 생활을 이어가던 저자의 눈앞에 우기를 마친 케냐 산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때, ‘삘’이 왔다. 이건 꼭 가야 해, 라는. ‘미친 포로원정대’의 케냐 산 등반기가 펼쳐진 순간이다.

‘쇼생크 탈출’ 같은 비장한 탈출기, ‘반지의 제왕’ 같은 격렬한 모험기를 예상했다면, 그런 기대는 즐겁게 접는 게 좋다. 이 책은 ‘코미디’다. 몇 달에 걸쳐 복제한 열쇠로 수용소 출입문을 열었다. 수십 발의 총알이 날아올 위험을 무릅쓰고 평원을 지난다. 군부대 차량이 오는 줄도 모르고 무심코 도로 위로 올랐다가 동료들한테 평생 들을 욕을 다 들었다. 고생은 이제 시작이다. 표범과 사자가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산길을 걷는다. 200m 앞에서 코뿔소를 발견하곤 그 코를 피하겠다고 걸음아 날 살려라, 줄행랑을 친다. 산을 오르다 풀밭이 나왔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케냐의 풀밭은 양탄자처럼 고른 게 아니라 무릎 높이까지 거칠게 자란 모양새다. 빗물이 발목까지 빠지는 도랑을 만들어서 흐르고 있다. 걸음을 잘못 뗐다간 발목을 삘 수도 있는 지경이니, 풀밭 지나가기가 여간 고생이 아니다.

이 책의 미덕은 이 힘겨운 등산을 놀랍도록 코믹하게 표현한다는 것이다. 머릿속으로 그려보면 사실 매 순간 생명이 위협받는 무서운 상황인데, 작가의 묘사는 유머가 넘친다. 우연히 마주친 짐승이 덤비는 대신 떠나버린 걸 보고 “우리가 수준 이하의 인간들이라는 사실을 눈치 챘나 보다”라고 떠든다든지, ‘검은 이빨’로 불리는 바위에 다다라선 앞선 등산인의 표식이 없는 걸 확인하고 ‘혹시 우리는 케냐 산 북벽의 이 외진 곳에 도달한 최초의 인류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든지 하는 부분이 그렇다. 분명 힘든데 유쾌한 기록을 통해 작가는 어려움을 극복하는 유머의 힘을 보여준다.

70여 년 전의 기록이지만 수용소의 포로 같은 삶을 살아가는 현대의 독자들에게도 와 닿을 법하다. 꿈을 위해 미친 모험을 해보라는.

김지영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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