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하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끊임없는 인간의 외로움 속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9일 13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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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서로서로가 상대방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전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둘도 없는 친구인 양 평생 동안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 상대자가 죽으면 울먹이면서 조사 따위를 읽는 게 아닐까요. -인간실격(다자이오사무·을유문학사·2004년)

‘친하다’의 정의는 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수만큼 다양하다. 누구는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 친분이 있다고 생각하고 누구는 서로가 중학생 때 저질렀던 가장 큰 실수 정도는 공유해야 친하다고 생각한다.

회사에 들어가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 친하다는 게 무엇일까 모호해지는 순간이 온다. 웃으며 회식하는 자리, 서로 더 이상 어떻게 친해질까 싶은 순간에 “서로 속마음을 털어놓아야 정말 친해지는 거야”라며 술잔이 불쑥 건네진다.

같은 조직에 있다 보면 상대가 어떤 일을 하며 밥을 먹고 사는지 세상 누구보다 잘 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대의 ‘실존’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는 셈이다. 조금만 노력을 기울이면 직계가족의 프로필은 물론 사촌의 거주지역쯤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끊임없이 나에 대한 사람들의 친분에 갈증을 느낀다.

“속마음을 털어놓고 친구가 되자”는 말에는 “나에 대한 너의 솔직한 감상이 궁금하다”는 속뜻이 담겨있을 것이다. 함께 밥을 먹고 술잔을 기울이며 웃고 직장상사에 대해 험담을 공유하고서도, 못내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을 달래려 자신의 속내를 슬쩍 내비치는 말일지도 모른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실격’에 나오는 주인공 ‘요조’는 인간은 서로를 명확히 알 수도 없으면서도 상대를 친구라 부른다고 쓴웃음 짓는다. 요조는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면서도 애정을 기울이는 것을 두려워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릿광대 노릇을 하며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는 일을 피해갔다. 그러나 그런 요조조차 가슴 속 눌어붙은 외로움을 죽을 때까지 떨치지 못했다.

요조는 세상이란 끊임없이 애정을 갈구하며 외롭게 사는 사람과 그 애정이 헛헛해 관계의 외곽을 방황하면서도 외로움에 시달리는 사람의 총합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어느 부류에 포함되는 사람일까.

송충현기자 balg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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