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그리스로마 신화를 보면 서양문화가 보인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3월 25일 22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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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와 서양문화’-윤일권 김원익 지음

그리스 로마신화. 어린 시절 머리가 그리 좋지도 않았고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은 나에겐 참 힘든 책이었다. 신들의 이름은 왜 이리 어려운지. 또 왜 그렇게 신들은 많은 지. 몇 번 공책에 신들의 족보를 그리다 포기했던 기억이 있다. 머리가 크고 거뭇거뭇한 털들이 턱에 자리를 잡을 무렵 다시 그리스 로마신화 책을 잡았다. 폼도 잡고 싶었고 서양문화를 이해하려면 그 원류인 그리스 로마신화를 알아야 한다는 ‘지적 폼재기’ 때문이었다. 고백하건데 여전히 만만하지는 않다.

최근 우리 사회에 인문학 바람이 불고 있다. 그 중심엔 그리스 로마신화가 똬리를 틀고 있다. 잘 알려졌듯이 그리스 로마신화는 서양 문화의 발원지다. 단순히 재미있는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면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와 서양문화(윤일권·김원익 지음 l 알렙 펴냄)’가 출간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먼저 이 책은 그리스 로마신화가 서양문화에 남긴 흔적들을 찾아 나선다. 이를테면 이렇다. 그리스 로마 신들은 신이라기보다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인간유형이라는 것이다. 제우스의 신조(神鳥)인 독수리는 로마와 히틀러 시대, 미국의 국조(國鳥)인 독수리와 연결시켜 제우스처럼 최고가 되고 싶은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동성애 코드도 끄집어낸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남성이 부친을 증오하고 모친에 대해 품는 무의식의 성적 애착)와 나르시시즘(자기 자신에게 애착하는 일) 등 신화의 원형과 인간의 심리를 접목시키기도 한다.

어렵고 복잡하게만 느껴지는 그리스 로마신화를 서양 문화와 연결시켜 미술관을 산책하듯 편안하게 독자를 끌고 가는 것도 큰 장점이다. 올림포스 신족, 인간 심리, 사랑, 영웅, 전쟁 등의 핵심 키워드를 통해 얽히고설킨 신화를 실타래 풀 듯 풀어간다.

수많은 그림과 계보도 그리고 지도 및 신화 관련 사진도 그리스 로마신화의 이해를 돕는다. 그 도우미들이 276장이나 된다고 한다. 어려운 신들의 이름 때문에 머리 아파했던 독자들에겐 고마운 일이다. 사실 이 책은 지난 10년간 대학가에서는 잘 알려진 책이다. 여러 대학에서 교양과목의 교재로 애용됐기 때문이다. 이번에 내용을 개정 증보하고 다양한 시각 자료와 계보도를 첨가했다. 다만 700쪽이 넘는, 다소 두꺼운 부피는 초보자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50여 페이지만 무난하게 넘기면 지루하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쉽고 깊은 책 뒤엔 신화 글쓰기 고수들이 있었다. 저자인 윤일권 교수는 독일문학을 전공하고 그리스로마신화와 유럽역사기행 등 유럽문화를 강의하고 있으며 문학과 신화 그리고 역사를 아우르는 글쓰기에 관심이 많다. 공저자인 김원익 박사는 신화연구가로 그간 KBS ‘TV특강’과 국내 유명기업 등에서 신화 명강사로 명성을 떨쳤다. 또 ‘신화, 인간을 말하다’ 등 10여권의 저서 목록을 가진 베테랑이다.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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