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들의 발자취 따라 유랑…유배지 통해 보는 역사의 아이러니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3일 1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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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유배지 답사기/박진욱 지음/424쪽·1만9500원·알마

미국의 대문호 마크 트웨인은 ‘철부지의 해외 여행기’(1869년)에서 이탈리아 폼페이를 둘러보고 “정적에 묻힌 죽은 자의 도시를 거닌다는 것, 그러나 이제는 완전히 폐허가 된 거리를 어슬렁댄다는 것은 기묘하고 멋스러운 유희일 수 있다”고 적었다. 조선시대 남해 유배지로 떠나는 여행도 어떻게 보면 이렇듯 기묘한 유희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우리가 볼 때 한없이 아름다운 풍광을 뽐내는 한려수도가 누군가에게는 고통과 회한에 젖은 눈물의 바다였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선비들의 발자취를 따라 남해 곳곳을 유랑하며 역사의 아이러니를 생생하게 포착했다. 이를테면 서포 김만중(1637~1692)이 유배를 떠난 경남 남해군 노도(櫓島)를 찾았을 때 이야기가 그렇다. 이틀 동안 낫질을 해가며 겨우 찾아낸 김만중의 조그마한 비석을 보면서 저자는 김만중의 숙적 류명현을 떠올린다.

숙종 때 이조판서까지 오른 류명현은 남인의 우두머리 허적과 윤휴를 탄핵한 김만중을 제거하는데 성공했지만 자신도 유배를 당해 결국 이 섬에서 눈을 감았다. 김만중이 세상을 떠나고 9년이 지난 뒤였다. 조정에서 오랜 세월 싸우던 두 사람이 결국은 머나먼 남해의 외딴섬에 함께 묻힌 것이다. 저자는 “한양 세도가의 한평생 영화와 몰락이 여기 한 개의 돌덩이로 남았다. 이틀에 걸쳐 그토록 헤매었던 것은 한 개의 돌멩이였다. 나는 돌멩이를 한 번 만져보고는 우물가 동백 그늘로 들어갔다”고 적었다.

그러나 유배지가 비극의 장소만은 아니었다. 김만중의 걸작 ‘구운몽’과 ‘사씨남정기’, ‘서포만필’ 등은 모두 유배지에서 태어났다. 저자는 “유배는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던 사람들에게 물러남과 돌아감, 멈춤의 미학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와 함께 13년 동안 남해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 수십 수의 한시를 남긴 자암 김구와 일종의 유배지 답사기인 ‘남해문견록’을 쓴 류의양 등을 통해 조선시대 ‘유배 문학’을 조명했다. 고려 말기 이 땅에 성리학을 도입한 학자 백이정이 귀양을 떠난 난포도 다뤘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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