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세는 관찰 예능? 경쟁보다 대리만족-힐링 찾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9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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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삼시세끼 어촌편’,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
tvN ‘삼시세끼 어촌편’,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
요즘 TV 예능은 인생의 축소판이다. TV만 봐도 삶의 모든 순간을 대리 체험할 수 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부터 학교와 군대, 직장, 처갓집마저도 예능의 무대가 됐다. 1인 가구나 공동주거, 귀농 등 다양한 삶의 모습도 관찰의 대상이다.

실제 삶의 공간을 무대로 출연진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포착하는 ‘관찰예능’이 대세다. 시청자들은 남의 삶을 지켜보며 관음의 재미를 느낀다. 현재 지상파 주요 시간대(평일 밤·주말 오후 및 저녁)에 방송되는 예능프로그램 29개 중 절반에 가까운 14개가 관찰 예능이다. 케이블 채널 예능 프로 역시 ‘삼시세끼’, ‘오늘부터 출근’, ‘꽃보다’ 시리즈 등 관찰예능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관음의 범위는 더 넓어졌고 농도는 더 진해졌다.

○ TV 예능이 대신 살아주는 인생

올해 예능 프로그램 판도를 점칠 수 있는 설 특집 파일럿 프로그램도 역시 ‘관찰예능’이 대세였다. SBS ‘아빠는 부탁해’ ‘썸남썸녀’ ‘불타는 청춘’, KBS ‘스타는 투잡 중’ 등은 모두 관찰예능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중 20대 초반 딸과 중년 연예인 아빠의 모습을 담아 10%가 넘는 시청률을 올렸던 ‘아빠를 부탁해’는 정규 편성돼 21일부터 방영된다.

국내 관찰예능의 신호탄은 교양 프로인 SBS ‘짝’(2011~2014년)이 쏘아 올렸다. 남녀 일반인 출연자가 서로의 마음을 얻기 위해 밀고 당기는 과정을 제작진 개입 없이 내보내 인기를 끌었다. 이후 2013년 혼자 사는 남자 연예인을 다룬 MBC ‘나 혼자 산다’로 본격적인 관찰예능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2014년 MBC ‘아빠, 어디 가?’ ‘진짜 사나이’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 등이 인기를 끌며 관찰예능은 단숨에 ‘대세’로 자리 잡았다.

이전 예능의 대세였던 ‘리얼 버라이어티’는 연예인들이 스튜디오나 미리 준비된 장소에서 특정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경쟁한다. 하지만 관찰예능은 출연진의 집이나 군 내무반, 정글, 시골집 등 실제 공간이 배경이다. ‘룸메이트’(SBS)처럼 한 집에 출연진을 통째로 등장시키기도 한다. 출연진이 먹고 자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며 예능인지 다큐인지 헷갈리도록 연출하는 것이 포인트다. 이창태 SBS 예능국장은 “출연자가 ‘무엇을 하느냐’에 초점을 맞췄던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출연자가 ‘누구인가’, 즉 출연자의 있는 그대로의 일상에 초점을 맞추는 관찰예능으로 트렌드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관찰예능의 ‘관음지수’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2008년 첫 방영한 MBC ‘우리 결혼했어요’의 변화가 상징적이다. 첫 방영 당시엔 ‘가상 결혼 버라이어티’라는 부제로 가짜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수시로 껴안고 볼에 뽀뽀하는 등 출연진 간 스킨십 수위를 올려 관찰 예능처럼 진화하고 있다. 14일부터 출연하는 새 연예인의 경우 제작진이 사전에 커플로 짝짓지 않는다. 출연진끼리 1대1 데이트를 한 뒤 마음에 드는 상대를 선택해 커플로 맺어질 경우에만 출연시키는 걸로 바뀌었다.

○ 관음과 대리만족 사이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팬으로 올해 초 삼둥이 달력을 구입하기도 했다는 미혼 여성 김모 씨(36)는 “대리만족과 ‘힐링’ 때문에 관찰예능을 본다”고 답했다. “회사 일로도 충분히 힘든데 TV에서까지 경쟁이나 게임을 보고 싶지 않다. 앞으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저렇게 키울 수 있을까, 남들은 저렇게 사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TV를 본다.” ‘슈돌’ 시청자 게시판에는 “우리 애는 밥을 잘 안 먹는데 삼둥이들은 밥을 잘 먹어서 예쁘다” 등의 감상이 자주 올라온다.

1990년대 후반 금융위기 이후 지속된 중산층의 붕괴가 이 같은 대리만족 심리를 자극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결혼과 육아, 해외여행 등 일상적인 중산층의 삶마저 동경의 대상이 됐다는 것이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인에겐 남의 눈을 의식하고 또 남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 하는 특유의 집단주의적 정서가 있다”며 “여기에 삶의 조건이 붕괴되는 구조적 문제가 겹쳐지면서 타인의 삶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는 심리가 강화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시청자들이 미니홈피와 블로그부터 최근의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훔쳐보기’에 익숙해졌다는 점도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해외에서 리얼리티 쇼가 인기를 끌던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국 시청자들이 이런 훔쳐보기에 거부감이 있었다”며 “최근 SNS 등의 영향으로 사람들이 과거보다 더 사생활을 드러내고 남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는데 익숙해지면서 방송의 관음증적 면모에 둔감해진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녹화 장비의 경우 40분 길이의 테이프가 디지털 저장장치로 바뀌며 최대 9시간까지 녹화할 수 있게 된 점과 원격 조종이 가능한 소형 카메라가 등장한 점도 관찰예능 발달에 한 몫을 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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