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스텔라’ 자문 천재과학자 킵 손 “웜홀 존재 증거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4일 17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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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
빛이 블랙홀 주변을 지날 때 구부러지는 ‘중력렌즈 효과’를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국내에서 천만 명 넘는 관객을 모은 영화 ‘인터스텔라’ 속의 우주는 진짜처럼 보인다. 탄탄한 이론물리학을 토대로 제작됐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못지않게 책임프로듀서 킵 손(Kip Thorne) 미국 캘리포니아 공대 명예교수(75)의 역할이 컸다는 평이다.

이론물리학자이자 블랙홀 전문가인 킵 손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명예교수가 중력과 관련된 물리학 공식을 칠판에 적고 있다. 사진 출처 ‘인터스텔라의 과학’
이론물리학자이자 블랙홀 전문가인 킵 손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명예교수가 중력과 관련된 물리학 공식을 칠판에 적고 있다. 사진 출처 ‘인터스텔라의 과학’

영화의 과학적 자문을 맡은 그는 스티븐 호킹 박사에 버금가는 세계적인 이론물리학자로 손꼽힌다. 그는 서로 다른 두 시공간을 잇는 우주의 지름길, 웜홀(worm hole)과 시간여행의 조건과 가능성을 논문과 저술을 통해 제시해왔다. 저서 ‘인터스텔라의 과학’(까치)도 올 초 국내에 발간됐다. 24일 그를 국내 언론에서는 최초로 이메일 인터뷰했다. 근황부터 물었다.

“인생을 즐겨야죠. 하하. 아내와 스키타고, 스쿠버다이빙을 합니다. 일도 열심히! 두 권의 책을 집필 중이고 또 다른 영화 작업도 돕고 있어요. 5월 서울디지털포럼 강연을 위해 한국도 방문할 계획입니다.”

천재 과학자로 불리는 그가 이론 연구를 넘어 영화 자문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에게 과학을 교육하는 것은 너무도 중요한 일입니다. 인류가 직면한 수많은 난제를 해결할 힘이 과학에 있죠. 영화, 소설 등은 과학을 교육시킬 강력한 수단이에요.”

영화 속 주인공은 토성 근처 웜홀을 이용해 또 다른 은하계로 이동한다. 우주의 지름길 웜홀은 강한 중력이 작용해 멀리 떨어진 두 공간을 휘어지게 만들어 두 공간을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 한다. “현재의 물리학 법칙으로는 웜홀의 존재가 인정될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분명 웜홀이 존재할 수 있다는 몇몇 이론적 증거가 있어요.”

그는 웜홀이 자연적으로 생겨날 가능성은 없다고 했다. 초고도 문명에 의해 만들어져야 한다고 설명한다. “웜홀을 가능케 하는 물리법칙이 발견된다는 전제 하에 언젠가 인류가 웜홀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다만 먼 미래일 겁니다. 수천 년, 아니 수 만 년 후는 돼야…. 기술적 어려움 때문이죠.”

그의 이론에 따르면 웜홀 속에서 시간여행도 가능하다.

“영화 속 주인공 쿠퍼와 로봇 타스가 5차원에 들어가고 특이점을 이용해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이 과정의 물리법칙이 판명된다면 시간여행의 비밀을 풀 수 있어요. 타임머신이 만들어져도, 작동되는 순간 폭발하고, 그래서 시간여행을 할 수 없을 거라는 것이 지금까지 연구입니다. 하지만 폭발이 일어나도 시간여행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를 풀는 열쇠가 바로 ‘양자중력(quantum gravity) 이론’입니다.”

수십 년 동안 물리학자들은 우주를 통일된 이론으로 설명하려고 했다. 물질의 움직임을 기술하는 양자 역학과 중력을 설명하는 상대성이론을 결합한 양자중력 이론이다.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면 영화 속에서 쿠퍼가 과거의 딸에게 메시지를 보낸 것처럼 과거를 바꿀 수 있을까?

“시간여행이 가능하다고 해도 과거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해요. 무언가가 항상 개입해 과거를 바꾸는 것을 막을 겁니다. 그 무언가는 바로 ‘노비코브의 자기 일관성 원리’입니다.”

이 원리는 타임머신으로 과거로 가서 아버지를 죽일 경우 자신이 태어나지 않아 과거로도 갈 수 없다는 모순이론이다.

킵손의 저서
킵손의 저서

킵손 교수는 외계인의 존재를 다룬 영화 ‘컨택트’도 자문했다. “광대한 우주를 볼 때 외계인이 존재한다고 믿는 편이에요. 인류보다 기술적으로 진보된 문명이 있을 겁니다. 다만 행성 간 거리가 너무 멀어 향후 수세기 동안 인류가 또 다른 문명을 만나는 상황은 일어날 것 같지 않아요,”

과학소설을 읽으며 과학자의 꿈을 키웠다는 그는 한국 학생들에게 영감을 줄 과학소설로 로버트 A. 하인라인의 ‘낯선 곳의 낯선 사람(Stranger in a Strange Land)’,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3부작(The Foundation Trilogy)’를 추천했다. 공동연구, 작업을 해온 스티븐 호킹, 칼 세이건 교수, 놀란 감독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호킹이 신체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모습은 큰 영감을 줬어요. 세이건은 행성과학, 우주생물학 분야 연구의 기반을 마련했어요. 놀란의 경우 영화의 모든 부분을 치열하게 컨트롤하는 게 장점이구요.”

그는 마지막으로 웜홀, 블랙홀 등 우주의 비밀을 풀 가능성은 미래세대에 있다고 강조했다. “수십 년 간 고민되던 우주의 비밀은 항상 우리가 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현상이 드러나면서 풀렸어요. 다음 세대에서는 더 많은 우주의 비밀이 풀릴 겁니다. 젊은 과학자들 멘토 역할에 집중하고 있어요. 그들을 통해 우주에 대한 인간의 이해를 더 넓히고 싶습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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