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韓·中의 애증, 20세기 지식인 교류로 엿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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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한중 교류의 기원/홍석표 지음/408쪽·2만7000원/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1933년 중국 상하이에서 만난 이육사(왼쪽)와 루쉰은 서로의 예술관과 세계관에 영향을 미쳤다. 이화여대출판부 제공
1933년 중국 상하이에서 만난 이육사(왼쪽)와 루쉰은 서로의 예술관과 세계관에 영향을 미쳤다. 이화여대출판부 제공
1933년 6월 중국 상하이에서 이육사는 루쉰(魯迅·1881∼1936)을 우연히 만난다. 중국 난징의 조선혁명군사간부학교를 졸업하고 국내로 잠입하기 직전 비장한 각오로 상하이를 찾은 이육사였다. 루쉰에 대한 책을 쓰기도 한 이육사는 깊은 감흥을 느낀 게 분명하다. 그는 ‘루쉰 추도문’이라는 글에서 “나의 손을 다시 한번 잡아줄 때 루쉰은 매우 익숙하고 친절한 친구였다”고 적었다. 현실을 개혁하려던 지식인 루쉰과 일제에 맞서 싸운 이육사가 하나의 점으로 연결된 순간이었다.

실제로 문학을 대하는 이육사의 태도는 루쉰의 그것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이육사는 자신의 책에서 “루쉰에 있어 예술은 정치의 노예가 아닐 뿐만 아니라 적어도 예술이 정치의 선구자”라고 적었다. 문학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고 한 두 사람의 예술관은 서로 뜻이 통했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와 세계대전, 냉전을 거치면서 한동안 잊혀졌던 20세기 초반 한중 지식인들의 교류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비록 일본에 주권을 빼앗긴 상태였지만 수천 년에 걸쳐 이어져온 한중 양국의 지적 교류는 끈끈했다.

재밌는 건 양국의 미묘한 애증관계가 당시에도 목격됐다는 것이다. 베이징대 교수 출신으로 1926년 경성제국대 중문과에 초빙된 웨이젠궁(魏建功) 교수는 “중한 인민이 감정적으로 미워하는 것과 이상으로서 정신적으로 우호적인 것은 공영공존 동아주의(東亞主義)의 표면과 이면이다”라고 말했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커다란 경제권을 형성하고 있는 양국이 동북공정 등 역사문제로 삐걱대는 현실과 겹친다.

저자는 이육사가 1926년부터 1년간 다닌 중국 베이징의 ‘중국대학’ 캠퍼스를 현지에서 고증하는 등 현장감을 살렸다. 또 졸업생 인터뷰를 곁들여 이육사가 어떻게 중국 현대문학에 빠져들었는지도 다뤘다.

영화 ‘색, 계’로 유명한 중국 작가 장아이링(張愛玲·1920∼1995)이 조선 최고 무용수 최승희와 만난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근대 한중 교류의 기원#이육사#루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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