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참여展 주도권은 관객이? 글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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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미술관 ‘숭고의 마조히즘’전
작품을 둘러싼 작가와 관객간 미묘한 권력관계 재조명

정재연 작가의 설치작품 ‘라는 제목의’. 강철 파이프와 밧줄, 검게 칠한 고무공을 긴장감 있게 배치한 뒤 아무 설명도 덧붙이지 않았다. 전시실 밖에는 연필과 메모판을 달아 놓아 관람객 각자가 제목을 생각해 쓸 수 있도록 했다. 박재홍 씨 제공
정재연 작가의 설치작품 ‘라는 제목의’. 강철 파이프와 밧줄, 검게 칠한 고무공을 긴장감 있게 배치한 뒤 아무 설명도 덧붙이지 않았다. 전시실 밖에는 연필과 메모판을 달아 놓아 관람객 각자가 제목을 생각해 쓸 수 있도록 했다. 박재홍 씨 제공
고창선 작가의 ‘빌리브 2015’. 의자에 둘러앉아 현미경으로 쌀알을 관찰하도록 유도한다. 전시실 출구에는 작가가 일방적으로 강요한 이 무의미한 행위를 구경하는 스크린을 설치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고창선 작가의 ‘빌리브 2015’. 의자에 둘러앉아 현미경으로 쌀알을 관찰하도록 유도한다. 전시실 출구에는 작가가 일방적으로 강요한 이 무의미한 행위를 구경하는 스크린을 설치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포장이 아름다운 선물상자는 두 가지 이유로 뜯어 열기 망설여진다. 첫 번째는 정성의 흔적이 오롯한 포장 매무새를 흩뜨리기 미안해서이고, 두 번째는 멋진 포장으로 인해 발생한 기대감을 그 내용물이 충족시킬 수 있을까 염려스러워서다. 4월 19일까지 서울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숭고의 마조히즘’전은 그런 불안한 예감의 선물을 닮았다.

주민선 선임학예연구사는 “최근 10년 새 현대미술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관객 참여’ 방식에 수반되는 작가와 관객 간의 미묘한 권력관계를 재조명하려 했다”고 말했다. 관람객이 경계표지의 제한 없이 작품에 개입하도록 유도하는 작품은 요즘 흔하디흔하다. 주 연구사는 “이런 작품은 얼핏 관객에게 작품을 완성할 주도권을 넘겨준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작가가 어떤 방식으로든 그 참여 방식을 제어한다”며 “관객 참여라는 모호한 설정에 대해 작가 7명이 저마다의 통찰을 제시했다”고 했다. 흥미로운 문제제기다.

그런데 어째서 ‘숭고의 마조히즘’일까. 판독하기 난감한 현대예술 작품을 접했을 때 경험하는 이중적 감정이 ‘숭고’함과 통한다는 설명이다. 당혹감과 불편함을 느끼는 동시에 감동과 매혹을 얻게 된다는 것. 이런 심리를 고통과 쾌락이라는 상반된 감정이 공존하는 마조히즘과 연결했다. 서울대라는 전시 공간에 잘 어울리는, 학구적인 제목이다.

‘관객으로서 작품을 감상할 때 지켜야 할 특정한 태도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전시 공간에서 작품과 관객 중 누구에게 더 큰 힘이 주어진다고 생각하십니까?’

미술관 계단램프 진입로와 호응하는 경사를 두고 기획자가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을 벽면에 계단 모양으로 새겼다. 여기까지가 선물포장이다. 망설임을 도닥이며 리본을 풀고 상자를 열어 목격한 첫 대상물.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현대 도시 풍광의 요소를 재조합한 임상빈 작가의 사진 작품이다. 작가와 피사체, 표현도구로 삼은 미디어 사이의 권력관계에 대해서라면 고민을 이끌어내 볼 만하겠지만 관객이 개입할 구석은 아무래도 눈에 띄지 않는다. 게다가 이미 공개된 수년 전 작품이 대부분이다.

박준범 작가의 ‘7개의 언어’는 8개 나라 사람들을 모여 앉힌 뒤 특정한 모양의 퍼즐 조각을 맞추도록 하고 그 과정을 기록한 영상물이다. 오용석 작가는 하늘, 바다, 수평선이 나오는 영화 장면을 수집한 뒤 수평선을 기준으로 각 장면을 재조합해 배열한 영상작품 ‘거의 모든 수평선’을 내놓았다. 손몽주 작가의 ‘확장-파장-연장’은 고무줄을 소재로 전시실 간 이동 통로를 재구성했다.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 앞에서 관찰할 수 있는 작가와 관객, 또는 미술관과 관객 사이의 권력관계 양상보다 이 기획전이 더 풍성한 문제제기를 할 수 있을까.

렘 콜하스가 설계한 서울대미술관은 건축물 의 아우라를 극복한 전시를 꾸리기 쉽지 않은 공간이다. 태양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천창(天窓) 보완이 아직 이곳의 고민거리다. 주제와 내용의 균형 잡기는 어쩌면 그 보완 뒤에야 가능한 숙제일지 모른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정재연#고창선#현대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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