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에 피던 꽃이 지셨습니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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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전 큰스님 열반에 부쳐

23일 입적한 법전 스님의 생전 모습. 27일 오전 11시 해인사에서 영결식과 다비식이 열린다. 대한불교조계종 제공
23일 입적한 법전 스님의 생전 모습. 27일 오전 11시 해인사에서 영결식과 다비식이 열린다. 대한불교조계종 제공
가야산에 열반의 종소리가 울렸다. 법전 큰스님의 입적(入寂)을 알리는 범종의 메아리가 도솔천까지 울려 퍼졌다. 본래 오고 감이 없는 생사의 길을 큰스님은 오고 감이 없이 왔다가 가셨다. 태어나고 죽음의 의미가 같은 것이라면 태어남이 축복이듯 죽음도 또한 축복이 될 수 있는 것이지만 종단의 어른을 잃은 슬픔으로 사부대중은 애도의 마음으로 스님을 그리워하고 있다.

“누구 없는가?”

스님의 아이콘처럼 남아있는 이 한마디 말씀이 종일 귀에 쟁쟁거리는 것 같다. 누구를 찾으면서 하신 말인지 알 수 없는, 영원히 화두로 남아있을 이 한마디가 스님의 생애를 대변하는 말이 되었다. 원래 이 말은 스님의 스승이신 성철 스님께서 법상에 올라 법문하실 때 하신 말씀으로 알려져 있는 말이었다. 대중을 향해 고함을 지르는 할(喝)을 하듯 내뱉은 말이었다. 이 말을 제목으로 법전 큰스님께서 자서전을 내고는 스님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절구통 수좌라는 별명으로 구십 평생을 살아오신 스님 인품의 특징은 한마디로 과묵한 그것이었다. 살아생전 당신은 별로 하실 말씀이 없으신 분인 것 같았다. 어쩌다 수하 사람으로부터 인사를 받을 때도 합장만 하고 가만히 앉아 계셔 말씀이 없으셨다. 외지에서 찾아와 인사를 드릴 때도 어디서 왔느냐고 묻지도 앉으셨다. 말 많은 세상에 말이 없는 분으로 존경을 받으셨던 것이다. 참선수행을 치열하게 해 오신 분이지만 선(禪) 공부 했다는 티도 내지 않으셨다. 자신을 항상 바보라고 생각하고 살아오신 어른이었다. 속 깊이 간직해 둔 보배의 칼(寶劍·보검)로 썩은 송장을 베는 일은 하지 않았다. 꼭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식의 자기주장을 내세우지도 않았다.

어느 날 스님은 독백을 하면서 시 한 수를 읊었다. 정진 중에 소회가 일어나 지은 자작시였다.

“내 말없는 그대에게 묻노니

몇 번이나 청산에 꽃이 피었다 지는 것을 보았는가?

봄이 아니면 꽃이 피지 않는다고?

고개를 들어 보게나 천지에 하얀 눈꽃이 피었다네.”

아마 한겨울 눈이 내릴 때 지은 시 같다. 스스로가 묻고 답한 시다.

평생 과묵하여 말이 없으시던 스님, 한 번도 남을 탓하던 일이 없으시던 스님, 자기를 닮지 않는다고 역정을 낸 일이 없는 스님, 참으로 깨끗하게 살아오신 이 시대의 어른이 떠나셨다.

북송(北宋) 때 유미타(喩彌陀)라는 스님이 있었다. 평생 아미타불 상을 그리며 산 화공(畵工) 스님이었다. 그가 그린 아미타불 그림을 보는 사람마다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한 번은 그의 그림을 보고 감탄을 하던 어느 사람이 그림은 이렇게 잘 그리는데 왜 참선을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이에 유미타가 시를 지어 답했다.

“평생 미타불만 그릴 줄 알았지

참선을 모르니 어찌하면 좋을까?

다행히 오호(五湖)에 풍월이 있으니

태평성대에 병기를 쓸게 무어 있으랴.”

지안 스님 조계종 고시위원장 통도사 반야암 회주
지안 스님 조계종 고시위원장 통도사 반야암 회주
스님은 공부란 자기 가풍대로 해야 한다는 것을 말없이 깨우쳐 주셨다. 또 한 분의 어른이 떠나가셨다니 허전해진다. 그러나 우리 문중에서는 본래 오고 감이 없다고 한다. 갑자기 라즈니시의 묘비명이 생각난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다. 나는 죽지도 않았다. 지구라는 행성에 잠시 왔다 갔을 뿐이다.”

지안 스님 조계종 고시위원장 통도사 반야암 회주
#법전 스님#지안 스님#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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