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그래만 미생? 살아가는 모두는 完生을 꿈꾸는 未生”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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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드라마 ‘미생’ 윤태호 작가-이재문 PD 좌담회

‘미생’은 어떻게 창조경제의 아이콘이 됐을까. 김태훈 씨(왼쪽)의 사회로 진행된 좌담회에서 윤태호 작가는 “전작인 ‘이끼’의 성공이 없었더라면 ‘미생’을 3년간 취재하도록 편집자가 기다려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재문 PD(오른쪽)는 “기존의 문법을 깨는 작품도 믿고 시간을 주는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CJ E&M 제공
‘미생’은 어떻게 창조경제의 아이콘이 됐을까. 김태훈 씨(왼쪽)의 사회로 진행된 좌담회에서 윤태호 작가는 “전작인 ‘이끼’의 성공이 없었더라면 ‘미생’을 3년간 취재하도록 편집자가 기다려주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재문 PD(오른쪽)는 “기존의 문법을 깨는 작품도 믿고 시간을 주는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CJ E&M 제공
“샐러리맨들이 왜 스트레스 받고 술 마시며 상사 욕 하겠나. 이 안엔 분명 드라마가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윤태호 작가)

“좀 다른 드라마를 하고 싶었다. 대기업의 한복판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주려고 조연 배역들을 다 키웠다.”(이재문 PD)

웹툰 ‘미생’의 윤태호 작가(45)와 드라마 ‘미생’을 기획한 이재문 CJ E&M PD(37). ‘대중의 공감을 이끄는 것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27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전시홀에서 열린 두 사람의 좌담회는 ‘2014 창조경제박람회’가 한창인 코엑스홀에서 가장 뜨거운 현장이었다. 작업실에서 그대로 빠져나온 듯 허름한 가죽점퍼 차림의 윤 작가는, 승진에 유리한 일감보다 꽂히는 사업에 몰두하는 미생의 오 차장 같았다. 말쑥한 양복을 차려입은 훤칠한 이 PD는 영업3팀에 막 합류한 천 과장과 비슷했다. 진행을 맡은 방송인 김태훈 씨(45)는 ‘미생’의 뜻부터 물었다.

△윤=출판사에서 바둑을 소재로 한 만화를 제안하면서 제목을 ‘고수’로 해달라고 했다. 난 고수들의 정신세계를 모른다. 그래서 ‘미생’으로 정했는데 어려워들 해서 ‘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라는 부제가 들어갔다. 고졸 출신의 비정규직 장그래는 미생이다. 그렇다면 정규직은 완생인가? 사장은? 살아가는 모두는 미생이며 완생을 지향한다.

―김=단행본도 200만 부 넘게 팔렸다.

△윤=(경제적) 여유가 생겨 연재 중인 ‘파안’을 위해 헬리캠을 띄워 촬영하기도 한다. 한편으론 경계심도 생긴다. 만화란 가내수공업처럼 소박해야 하는데. 드라마로 영화로 된다고 해서 절대 내 일 자체의 성격이 변해선 안 되겠구나 조심하게 됐다.

△이=회사문화가 우리와 비슷한 일본에서 반응이 올 줄 알았는데 중국중앙(CC)TV가 ‘미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14분간 방영했다. 미국에선 리메이크 얘기를 한다. 뉴욕 월스트리트에 워커홀릭이 많아 회사가 배경인 드라마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드라마가 웹툰으로 제작된 경우도 있나.

△이=드라마 ‘갑동이’가 방영 시작 전 웹툰으로 기획됐고 ‘이웃집 꽃미남’은 방송 후 웹툰으로 나왔다. 작품이 좋다면 어떤 장르로 변환되든 수용자들은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윤=(윤 작가의 인기 웹툰인) ‘이끼’가 강우석 감독의 영화로 제작됐을 때 시나리오를 웹툰으로 그려달라는 요청이 많았다. 원작이라는 형식을 빌려 (개봉 전 영화의) 붐을 일으키거나, 아니면 작품에 대한 반응을 봐가며 영상화하려는 것이다.

―(방청객이) ‘미생’은 창조경제의 아이콘이다.

△윤=경제적인 효과를 생각하고 작품을 그리진 않는다. 하지만 2차 저작물로 확대되는 것을 터부시할 필요는 없다. 이끼는 5년, 미생은 4년 7개월 걸렸다. 작가 인생에서 4, 5년을 바친 작품이 (드라마나 영화로) 확대 재생산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작가들이 자극적인 걸 만들어내려 하기보다 좀더 예민해졌으면 한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얘기를 동어반복하지 말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개성적인 인간형을 어떻게 그려낼지 고민해야 한다.

―(방청객이) 지상파 드라마가 위기라는 얘기가 나온다. 웹툰이 드라마 시장에 변화를 가져올까.

△이=시청자들의 기호를 알 수 없으니 웹툰으로 검증된 콘텐츠를 찾게 된다. 작가의 시대가 아니라 기획자의 시대로 가고 있다. 리메이크 붐이 일어난 지도 오래됐다. 기존에 고수했던 시청률 공식, 빠른 시간에 만들어내는 제작 시스템을 재점검해야 한다.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르게 가보려는 시도들을 받아들이는 환경이 됐으면 한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윤태호#미생#이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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