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 진실의 소유욕과 닫힌 사회에 대한 경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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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박경리 문학상 최종 후보자들]<1> 英 소설가 안토니아 수전 바이어트

영국 작가 안토니아 수전 바이어트는 19세기 중후반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조지 엘리엇 이후 가장 지적인 여성 작가로 꼽힌다. 그는 소설 ‘소유’로 1990년 영국 최고 문학상인 ‘부커상’을 수상했고 대영제국 훈장인 커맨더훈장(CBE)을 받았다. 열린책들 제공
영국 작가 안토니아 수전 바이어트는 19세기 중후반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조지 엘리엇 이후 가장 지적인 여성 작가로 꼽힌다. 그는 소설 ‘소유’로 1990년 영국 최고 문학상인 ‘부커상’을 수상했고 대영제국 훈장인 커맨더훈장(CBE)을 받았다. 열린책들 제공
《국내 최초의 세계문학상인 ‘박경리문학상’이 올해 4회를 맞는다. 보편적 인간애를 구현한 ‘토지’ 작가 박경리 선생(1926∼2008)의 문학정신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11년 제정됐다. 이 상은 토지문화재단(이사장 김영주)과 박경리문학상위원회, 강원도와 원주시, 동아일보사가 공동 주최하며, 상금은 1억 원. 초대 수상자는 ‘광장’의 작가 최인훈, 제2회 수상자는 러시아 작가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제3회 수상자는 미국 작가 메릴린 로빈슨이었다. 올해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회(위원장 오탁번 고려대 명예교수)는 유럽 지역 후보 작가 13명을 심사해 최종 후보 5명을 최근 결정했다. 수상자는 다음 달 말 발표할 예정이다. 최종심에 오른 후보 가운데 첫 번째로 영국 소설가 안토니아 수전 바이어트를 소개한다. 한국문학번역원장이자 서울대 교수인 김성곤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이 그의 작품세계를 분석했다.》

안토니아 수전 바이어트의 대표작 ‘소유’.
안토니아 수전 바이어트의 대표작 ‘소유’.
영국 최고의 문학상인 ‘부커상’ 수상 작가인 안토니아 수전 바이어트(78)는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최첨단 포스트모던 주제와 인식을 다루는 대표적인 영국 소설가다. 1936년 영국 요크셔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대와 요크대에서 공부했다. 1972년부터 런던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영미문학을 강의하다가 1983년 대학을 떠나 전업 작가로 변신했다.

부커상 수상작이자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소유’에는 존 파울스의 소설 ‘프랑스 중위의 여자’처럼 시공을 초월해 19세기와 20세기를 오가면서 과거와 현재를 서로 거울삼아 비춰보는 포스트모던적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소설은 롤런드 미셸과 모드 베일리가 우연히 19세기에 살았던 두 시인인 랜돌프 애시와 크리스타벨 라모트의 숨겨진 로맨스를 밝혀주는 편지를 발견한 후 두 시인이자 연인에 얽힌 진실을 복원하고 탐색하는 과정으로 구성돼 있다. 그 과정에서 현대의 두 학자이자 연인은 자신들의 관계를 선배들의 로맨스에 비춰 재조명한다. 빅토리아 시인 애시와 라모트의 로맨스는 실제 영국 시인들인 로버트 브라우닝과 크리스티나 로제티의 유명한 로맨스를 연상시킨다.

소설에서 미셸과 베일리는 그동안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던 두 연인의 편지와 일기를 찾아내 그들의 숨겨진 로맨스의 진실을 밝혀낸다. 그 과정에서 미셸은 애시의 친필 편지를 도서관에서 훔치기도 한다. 그러나 소설 마지막에서 애시의 무덤 속에서 발견된 또 하나의 편지로 인해 갑자기 또 다른 진실이 드러나고, 그 결과 지금까지 그들이 찾아낸 진실의 유효성은 의심되고, 모든 것은 다시 불확실해진다. 또한 베일리가 애시와 라모트가 낳은 사생아 딸의 직계 자손임이 밝혀지면서, 미셸과 베일리는 서류도둑과 그의 공범이 아니라 그 서류의 합법적인 ‘소유’자라는 것이 밝혀진다. 학자인 그들을 괴롭히던 윤리적 문제가 갑자기 해결된 것이다.

‘소유’는 절대적 진리를 발견해 소유하려는 강박관념과 사랑하는 사람을 소유하려는 집착이 사실은 불가능하고 위험한 추구라는 점을 경고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바이어트는 이 시대의 복합적인 시각과 인식을 잘 보여주는 뛰어난 포스트모던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소유’에는 포스트모던 소설양식이라고 불리는 다양한 명칭(로맨스 소설, 미스터리 소설, 풍자소설, 역사추리소설, 역사 메타픽션)이 따라 붙는다.

국내에 번역된 ‘천사와 곤충’에서는 곤충사회의 습성을 인간사회에 비유해 순혈주의의 위험과 닫힌 체계의 파멸을 경고했다. 가난한 노동자 가문 출신 박물학자 윌리엄 애덤슨은 몰락한 귀족 하랄드 알라바스터 경의 딸 유지니아와 결혼해 처가살이를 한다. 윌리엄은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처가에서 자신이 겪는 차별과 소외감, 그리고 어느 날 목격한 아내 유지니아와 그녀의 오빠 에드가의 정사가 곤충사회(특히 개미와 나비)와 놀랄 만큼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소설에서 그는 함축적인 은유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예컨대 애덤슨(아담의 후손이라는 뜻)과 유지니아(좋은 가문 출신이라는 뜻)라는 이름, 둘 다 날개가 달렸지만 본질은 정 반대인 천사와 곤충, 그리고 스펠링 배열만 다른 Insect(곤충)와 incest(근친상간) 등이 그러하다.

바이어트는 ‘소유’에서 학자와 시인, 진실과 허구, 사랑과 소유, 기록문서와 구전 이야기를 대칭시켜 놓고, 그 절대적 경계를 무너뜨리며 새로운 인식의 세계로 독자들을 데리고 간다. ‘천사와 곤충’에서는 폐쇄된 사회와 순혈주의는 필연적으로 부패하며 붕괴한다고 경고하며 그것을 막거나 지연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열린 사회의 건설과 혼혈시대 즉 하이브리드 시대의 도래라고 주장한다. 그의 문학세계는 우리의 눈을 뜨게 해주는 포스트모던 인식에 근거해 있다.

○ 김성곤 심사위원은…


서울대 명예교수. 한국문학번역원장, 미국 뉴욕주립대 영문학 박사. 저서로 ‘경계를 넘어서는 문학’, ‘하이브리드 시대의 문학’, ‘글로벌 시대의 문학’ 등이 있다. 국제비교한국학회장, 문학사상 편집주간, 서울대 언어교육원장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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