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공연 중 객석서 삐리릭~ 당신도 ‘스마트폰 진상’?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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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23년 만에 내한공연을 가진 ‘스위스로망드오케스트라’의 공연 중 객석에서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리자 관객들 사이에 어이없다는 듯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연주자들은 당황한 기색을 보였지만 이내 태연하게 연주를 이어갔다. 빈체로 제공
5일 23년 만에 내한공연을 가진 ‘스위스로망드오케스트라’의 공연 중 객석에서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리자 관객들 사이에 어이없다는 듯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연주자들은 당황한 기색을 보였지만 이내 태연하게 연주를 이어갔다. 빈체로 제공
지난해 8월 서울시향이 연주한 말러 교향곡 9번은 클래식 팬들 사이에서 ‘벚꽃엔딩 협주곡’으로 불린다. 이 공연은 세계적인 클래식 음반 레이블인 도이체 그라모폰(DG)이 실황을 녹음했다. ‘불청객’은 정명훈 감독의 지휘로 1악장 연주가 조용히 이어지고 있을 때 등장했다. 갑자기 그룹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 휴대전화 벨소리가 크게 울려 퍼진 것. 공연 이후 인터넷에선 해당 관객을 질타하는 공연 후기가 이어졌고, 말러 9번 1악장은 졸지에 벚꽃엔딩 협주곡이란 새 별명을 얻었다.

5월 23일 열린 서울시향의 ‘정명훈의 말러 교향곡 5번: 더브릴리언트 시리즈2 연주회’. 공연 전 ‘휴대전화 전원을 꺼 달라’는 몇 차례 안내방송이 나갔지만 3악장의 서정적인 연주가 물이 오를 즈음 객석에선 요란한 휴대전화 벨소리가 두 차례나 울렸다. 연주자들뿐 아니라 객석의 다른 관객들마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해 아시아 오케스트라로는 최초로 DG와 음반 발매 장기 계약을 한 서울시향은 ‘벨소리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주요 공연의 실황을 녹음해 음반으로 발매해야 하는데 난데없는 벨소리가 녹음을 망치고 있는 것.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실황 음반 작업 시 특정 프로그램을 통한 소음 제거는 필수 작업이 됐다. 서울시향의 연주 실황 음반을 담당하는 톤마이스터 최진 씨(41)는 “휴대전화 벨소리와 관객의 기침소리 같은 소음과 잡음은 특정 편집 프로그램을 이용해 매번 지우는 작업을 한다”며 “심각한 상황을 고려해 리허설 연주 녹음을 해 놓고 나중에 짜깁기 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향뿐만 아니다. 클래식 공연 단체와 기획사들도 휴대전화 벨소리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 최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달아 열린 스위스로망드오케스트라와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의 공연,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의 말러 9번 정기연주회에서도 벨소리는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을 기획해온 공연기획사 ‘빈체로’는 최악의 ‘벨소리 테러’를 겪었다. 2011년 3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오케스트라인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내한공연이었다.

“당시 브루크너 8번 중 3악장의 아다지오를 연주 중이었다. 그때 객석에서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그런데 그 벨소리는 장장 38초 동안 이어졌다. 조용히 연주되는 아다지오 부분이라 누가 접근해 말릴 수도 없었다. 답답함을 넘어 미칠 지경이었다.”(빈체로 송재영 부장)

이날 공연에선 그 흔한 앙코르 연주도 없었다. 콘서트가 끝난 뒤 지휘자 리카르도 샤이는 “연주를 계속했지만 분명 벨소리에 영향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이는 휴대전화 벨소리 테러의 한 획을 그은 사건(?)으로 공연계에 두고두고 회자됐다.

이후 휴대전화 벨소리를 막기 위해 나름의 자구책도 나왔다. 빈체로는 3년 전부터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측에 공연마다 5만 원을 지불하고 휴대전화 전원 끄기, 악장 사이 박수 금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추가 안내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일본 공연장에서는 전파차단기를 설치해 휴대전화 벨소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관객이 공연장에 들어서면 휴대전화는 자동으로 ‘먹통’이 된다. 국내에서도 2000년대 초 서울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에서 전파차단기를 시범 도입해 운영했지만 2003년 당시 정보통신부는 ‘누구든지 전기통신 설비의 기능에 장해를 줘 전기통신의 소통을 방해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전기통신사업법 조항을 이유로 최종 불허 결정을 내렸다.

음악평론가 류태형 씨는 “소리는 클래식 공연의 생명이나 다름없다”며 “정부가 전기통신사업법을 너무 경직되게 해석했다. 공연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주요 공연장 안에 전파차단기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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