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이 책, 이 저자]다섯번째 시집 ‘지금 여기가 맨 앞’낸 이문재 시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31일 03시 00분


코멘트

“詩는 멋있는 1人시위 메시지… 번번이 실패하기에 계속 쓰죠”

10년 만에 다섯 번째 시집을 펴낸 이문재 시인. 그는 “시 쓰는 일은 매번 실패하는 일이다. 번번이 실패하기에 계속 시를 쓰는 것이다”라고 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10년 만에 다섯 번째 시집을 펴낸 이문재 시인. 그는 “시 쓰는 일은 매번 실패하는 일이다. 번번이 실패하기에 계속 시를 쓰는 것이다”라고 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이문재 시인(55·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이 10년 만에 시집 ‘지금 여기가 맨 앞’(문학동네)을 펴냈다.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이다. ‘시인의 말’에 이렇게 적었다. ‘네 번째 시집 이후 생각이 조금씩 바뀌어 왔다. 시란 무엇인가라고 묻는 대신 시란 무엇이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29일 만난 시인이 그랬다. “시가, 멋있는 1인 시위가 됐으면 좋겠다.”

‘지금 여기가 맨 끝이다./나무 땅 물 바람 햇빛도/저마다 모두 맨 끝이어서 맨 앞이다/기억 그리움 고독 절망 눈물 분노도/꿈 희망 공감 연민 연대도 사랑도/역사 시대 문명 진화 지구 우주도/지금 여기가 맨 앞이다.//지금 여기 내가 정면이다.’(‘지금 여기가 맨 앞’ 중)

“살아있다는 걸 어떤 방식으로 확인할까. 지금이라는 시간, 여기라는 공간에서 나라는 주체가 무엇을 하는지 알면 된다. 돈 가진 사람, 정규직, 학벌 좋은 사람, 그런 사람이 맨 앞에 있고 나는 뒤에 있다는 자괴감 무력감이 팽배한 것 같다. ‘지금 여기가 맨 앞’은 만트라(주문) 같은 거다. 공유하고 싶은.”

시인이 펼치는 1인 시위의 메시지는 세계와 타인과 나를 온전하게 느끼는 감성을 회복하자는 것 같다. 감성을 회복하는 도구가 바로 시다.

“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여야 한다. 시가 독자의 마음을 건드리기 위해서는 아포리즘(잠언)이 필요하다. 자칫하면 대중성 논란에 휩싸일 수도 있지만 아포리즘이 수행하는 역할이 있다. 자기 문제를 상의할 이가 곁에 없어 사람들은 책에서 답을 찾으려고 한다. 시가 그 역할을 일부 담당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어떤 경우에는/내가 이 세상 앞에서/그저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어떤 경우에는/내가 어느 한 사람에게/세상 전부가 될 때가 있다//어떤 경우에도/우리는 한 사람이고/한 세상이다.’(‘어떤 경우’)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기도하는 것이다.’(‘오래된 기도’ 중)

“잠언이라는 결과물이 쉬워 보이지만 그걸 만들어내는 과정은 만만하지 않다. 새로운 걸 발견하기 위해 시인은 끊임없이 관찰하고 생각하고 상상한다.”

시인의 관심사는 집, 손 같은 것에 가닿아 있다. 시인은 현대인의 집은 ‘상품 포장지를 벗기는 곳’으로 전락했다고 한탄한다. 어린 시절 연필을 깎고 연을 만들던 손은 이제 신용카드를 긁을 뿐이다. 집과 손의 기능이 줄어든 만큼 우리의 삶도 왜소해지고 있다. 그는 도시를 마을로 만들고 싶은 꿈이 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이 세계는 서로 연결돼 영향을 주고받는다. 사회적 문제를 시에 어떻게 초대하고, 그것을 어떻게 독자와 만나게 할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한다. 그것이 시가 할 일이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이문재#지금 여기가 맨 앞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