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南美를 발굴한 ‘19세기 과학영웅’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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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볼트의 대륙/울리 쿨케 지음·최윤영 옮김/252쪽·1만6000원·을유문화사

알렉산더 폰 훔볼트는 19세기 전반 최고의 과학영웅이었다. 왼쪽부터 30대의 훔볼트가 베네수엘라 오리노코 강에서 채집한 식물을 연구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 훔볼트의 이름을 딴 훔볼트 펭귄. 훔볼트가 남미 탐험여행에서 직접 스케치해온 뒤 전문 화가를 고용해 수채화로 그린 난초. 을유문화사 제공
알렉산더 폰 훔볼트는 19세기 전반 최고의 과학영웅이었다. 왼쪽부터 30대의 훔볼트가 베네수엘라 오리노코 강에서 채집한 식물을 연구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 훔볼트의 이름을 딴 훔볼트 펭귄. 훔볼트가 남미 탐험여행에서 직접 스케치해온 뒤 전문 화가를 고용해 수채화로 그린 난초. 을유문화사 제공
훔볼트라는 이름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독일 베를린의 훔볼트 대학, 페루 앞바다의 훔볼트 해류, 남미에 사는 훔볼트 펭귄이 유명하다. 이 정도는 약과다. 그 이름을 딴 동물이 19종, 식물은 15종이며 산맥, 봉우리, 공원, 광산, 항만, 호수, 유성까지 있다.

인문교양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언어학자이자 19세기 초 프로이센 제국의 교육부 장관 카를 빌헬름 폰 훔볼트(1767∼1835)를 떠올릴 것이다. 1810년 그의 제안으로 훗날 헤겔, 마르크스, 아인슈타인, 그림 형제를 배출하는 베를린대가 설립된다. 1949년 이 대학이 베를린 훔볼트대로 개명했다. 그 개명에는 그의 동생 알렉산더 폰 훔볼트(1769∼1859)를 기리는 의미도 담겨 있다. 실제 그 무수한 훔볼트의 대다수는 형 빌헬름보다 동생 알렉산더 때문에 붙은 것이다.

훔볼트는 왜 그토록 유명한 이름이 된 것일까. 이 책에 그 해답이 담겼다. 부유한 명문 귀족가문 출신의 훔볼트 형제는 대조적 삶을 산다. 어릴 적부터 천재로 불린 형이 인문학에 매진할 때 동생은 자연과학과 모험의 길을 택한다. 알렉산더는 최초의 학자 탐험가였던 제임스 쿡 선장을 흠모하면서 광물학, 식물학, 동물학, 천문학에 심취했다.

젊은 나이에 부모의 재산을 나눠 물려받은 그는 서른 살에 자신의 전 재산(오늘날 가치로 30억 원)을 현금화한 뒤 목숨을 건 남미 탐험에 나선다. 18세기에서 19세기로 바뀌는 세기 전환기에 이뤄진 이 5년간의 탐험여행에서 그는 전대미문의 학술 성과를 올린다. 그가 수집한 6200여 종의 식물 중 3600종이 새로 발견된 종이었다. 그전까지 유럽학계에 소개된 식물종을 다 합쳐야 8000여 종일 때였다. 전기뱀장어와 메기, 과차로새 같은 동물까지 합치면 당시 유럽에 알려진 생물 종의 4분의 1에 육박하는 발견이었다.

그뿐만 아니다. 전설의 나라 ‘엘도라도’가 존재할 수 없음을 입증했다. 또 오리노코와 아마존 두 개의 거대한 강을 연결해주는 자연운하(수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훔볼트는 19세기 초까지 세계 최고봉으로 여겨진 에콰도르의 침보라소 산(해발 6310m) 정상에 가장 가까이(5881m) 올라간 사람, 즉 세계에서 가장 높이 올라간 사람이기도 했다.

사실 훔볼트 이전만 해도 남미는 약탈의 대상이었지 연구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콜럼버스가 남미를 발견했다면 훔볼트는 남미를 발굴해냈다. 이를 위해 훔볼트는 엄청난 관측·실험 장비와 자료를 들고 모기떼에 시달리며 밀림을 헤집고 다녔다. ‘걸어다니는 대학’이란 평을 들을 만큼 방대한 지식과 강렬한 호기심, 막대한 재산, 열대기후를 견디며 3만 km를 여행한 강철체력, 자신의 연구를 위해 사람을 사로잡는 사교력을 겸비했기에 가능한 기적이었다. 90세까지 장수한 그는 이런 탐험을 토대로 다양한 과학 글을 발표했는데 말년엔 지구와 별, 우주까지 아우르는 ‘코스모스’(전 5권)를 펴냈다. ‘다윈 이전에 훔볼트가 있었다’는 이 책의 평가를 빌려 말하자면 ‘칼 세이건 이전에도 훔볼트가 있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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