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 홍대용-淸 엄성 ‘天涯知己’ 배경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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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연구원 학술논문

그림 실력이 빼어났던 엄성은 홍대용을 비롯한 조선사신단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다. ‘천애지기’ 홍대용(위 사진)은 단정한 용모의 선비로 묘사됐다. 홍대용 아래로 사신단의 정사 이훤, 부사 김선행의 모습이 보인다. 동아일보DB·이철희 연구원 제공
그림 실력이 빼어났던 엄성은 홍대용을 비롯한 조선사신단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다. ‘천애지기’ 홍대용(위 사진)은 단정한 용모의 선비로 묘사됐다. 홍대용 아래로 사신단의 정사 이훤, 부사 김선행의 모습이 보인다. 동아일보DB·이철희 연구원 제공
조선의 홍대용(1731∼1783)과 중국 항저우 출신 한족 선비 엄성(嚴誠·1732∼1767·사진)의 우정은 천애지기(天涯知己)라 불리며 한중 지식인 교류사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천애지기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서로를 알아주는 각별한 친구라는 뜻이다.

홍대용은 1766년 초 조선 사신단의 수행원(자제군관)으로 중국 연경(베이징)을 찾았다가 과거시험을 보러 온 엄성을 만났다. 두 사람은 한 달 동안 일곱 번 만나고 평생 국경을 뛰어넘는 우정을 나눴다. 병에 걸린 엄성이 홍대용이 선물해 준 묵향을 맡으며 숨을 거뒀다는 얘기나 엄성의 임종을 전해들은 홍대용이 보낸 제문이 엄성의 2주기 제삿날에 맞춰 도착했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이런 우정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과거에는 홍대용이 남긴 ‘건정동필담(乾淨동筆談)’을 근거로 ‘존명배청’ 의식을 이 둘을 이어준 공통분모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건정동필담에는 한족 출신인 엄성과 그의 친구 반정균이 “명나라 이야기가 나오면 표정이 어두웠다”거나 “조선에서 대명 의리를 상징하는 김상헌의 시를 외우고 있었다”고 전한다. 홍대용이 김상헌의 후손 김원행의 제자로 연행길에 나설 때만 해도 강한 반청 의식을 드러냈다는 점도 이런 해석의 근거다.

하지만 이철희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수석연구원이 ‘대동문화연구’ 최신호(85집)에 투고한 학술논문 ‘18세기 한중 지식인 교유와 천애지기의 조건’에서 엄성이 남긴 문집인 ‘일하제금집(日下題襟集)’을 근거로 다른 해석을 제기한다. 이 문집에서 엄성은 “청의 건국 과정은 명의 원수를 갚는 과정이었다”거나 “조선이 독자적 복식제도를 유지하는 것도 우리나라(청)의 관대함의 증거가 아니겠느냐”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한족이 아닌 중화인으로 규정한다.

이 연구원은 그 우정의 원천을 양쪽 모두 불우한 선비 처지라는 공감대에서 찾았다. 그는 “둘의 대화에서도 조청 양국 과거제도의 모순에 대해 공감하며 한탄하는 내용이 나온다”며 “서로 인정하기 힘든 정체성을 부과했다는 점에서 불편과 갈등의 소지가 있었지만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서로의 고뇌를 이해하고 친구로서의 결속을 다질 수 있었던 걸로 보인다”고 했다.

홍대용을 비롯해 조선 사신단이 “조선으로 돌아가면 불후의 가보로 남기겠다”고 했을 정도로 엄성의 시서화 실력을 칭송한 영향도 컸다. 이 역시 건정동필담에는 없고 일제하금집에만 전해진다. 이 연구원은 “한족 배신자를 칭송했다는 비판을 의식한 홍대용이 편찬 과정에서 관련 내용을 포함시키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홍대용#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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