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현대미술, 세계시장 향해 성큼성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16일 03시 00분


코멘트

제2회 ‘아트 바젤 홍콩’ 현장을 가다

‘아트 바젤 홍콩’은 참여 화랑 중 50%를 아태 지역에서 선정해 ‘아시아의 지역성’을 드러냈다. 올해는 처음으로 필름 섹션도 등장했다. 홍콩=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아트 바젤 홍콩’은 참여 화랑 중 50%를 아태 지역에서 선정해 ‘아시아의 지역성’을 드러냈다. 올해는 처음으로 필름 섹션도 등장했다. 홍콩=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14일 홍콩 컨벤션전시센터에서 열린 제2회 아트 바젤 홍콩의 프리뷰. 신기하고 놀라운 볼거리가 가득했다. 사람들의 머리카락으로 만든 188개국의 국기들이 천장에 줄줄이 매달려 있는가 하면 중국의 반체제 작가 아이웨이웨이를 본뜬 실물 크기 조각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가고시안, 페이스, 아콰벨라, 화이트큐브, 페로탱 등 미국과 유럽의 프리미어리그급 갤러리들이 세계 미술의 변방에 속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아제르바이잔, 베트남 등의 화랑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것도 흥미롭다. 통로 곳곳에서 거물 컬렉터와 미술관 큐레이터, 무라카미 다카시 같은 유명 작가들이 반갑게 인사하는 풍경도 보인다.

해마다 6월 스위스 바젤에서 세계 최대의 미술품 장터를 주관하는 ‘아트 바젤’이 미국 마이애미에 이어 아시아에서까지 성공적으로 뿌리내리고 있다. 3개 대륙의 행사를 총괄하는 마크 스피클러 디렉터는 “아시아에 국제적 화랑들이 참여하는 진정한 글로벌 플랫폼이 생겨났다”고 말했다. ‘아트 바젤 홍콩’의 이름을 처음으로 내건 지난해 관객 수는 6만 명. 바젤의 네트워크와 기획력, 전문성에 힘입어 참여 화랑들의 질과 양, 전시부스 연출 등에서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등을 제치고 단숨에 아시아 아트 페어의 최강자로 떠오른 것이다.

아트 바젤은 심사를 통해 참여 화랑을 선정한다. 올해 홍콩에는 39개국 245개 갤러리가 참여했다. 이 중 50%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이다. 한국에선 국제, 아라리오, 학고재, PKM 등 10곳이 포함됐는데 현대, 가나는 경매사와 연계돼 있어 배제됐다. 지금까지 바젤과 마이애미의 경우 진입장벽이 워낙 높아 탈락 화랑으로부터 ‘그들만의 잔치’라는 원성이 자자했는데 개최 도시의 특성을 감안해 홍콩에선 상대적으로 아시아의 지분을 확대하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서구의 대표적 갤러리들과 아시아 갤러리를 뒤섞은 아트 바젤 홍콩은 먼 곳까지 가는 데 시간 내기 힘든 동양 컬렉터들과 아시아에 관심 있는 서양 컬렉터들에게 주목받는 행사다. 홍콩 페어를 지휘하는 매그러스 랜프루 디렉터는 “같은 아시아라도 그 안에 다양한 현대미술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아트 페어”라고 소개했다. 실제 전시장을 둘러보면 낯익은 서구 작가들 사이에서 아시아 작가들의 존재감이 뚜렷하게 느껴졌다. 그중에서도 중국 대만 홍콩을 중심으로 한 범중국권 계열 작가들이 압도적인 것은 중국 미술시장의 파워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용백 이세현 씨 등을 중심으로 부스를 구성한 학고재 우찬규 대표는 “2008년부터 참여했으나 ‘바젤’ 이름을 단 지난해 첫 흑자를 기록했다”며 “경제 중심이 아시아로 이동하는 만큼 장기적으로 마이애미를 능가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고 말했다. 김시연 작가의 단독 전시를 꾸민 갤러리 엠 손성옥 대표는 “비용이 많이 들어도 세일즈 측면에서 가장 낫고 ‘바젤’ 브랜드로 갤러리 위상이 높아지는 효과도 있다”고 했다.

국내 화랑 중 유일하게 바젤, 마이애미, 홍콩에 참여하는 국제갤러리는 정상화 김홍석 함경아 양혜규 씨 등을 소개했다. 이현숙 회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한국 단색화에 대한 해외 미술관과 컬렉터들의 관심이 부쩍 높아졌음을 반영하듯 프리뷰 때 정상화 작가의 그림 2점이 모두 나갔다”며 “우리나라 대표 브랜드로 단색화가 자리 잡도록 꾸준히 조명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아트 바젤의 홍콩 진출로 아시아 미술을 세계에 알리는 플랫폼이 등장한 것은 반갑지만 그 무대의 주도권은 서구 화랑들이 쥐고 있어 씁쓸함을 남긴다. 일본 도미오 고야마 갤러리의 도미오 고야마 대표는 “결국 아시아 시장을 빼앗아가는 측면이 있다. 서구 경매사와 화랑이 늘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고 개척하는 작업을 주도해왔기에 우리로선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 “민낯으로 소개팅 나온 기분입니다” ▼
별도 기획전 ‘인카운터’전에 한국 유일 참여 이수경 작가


자신의 작품 ‘Thousand’ 앞에 선 이수경 작가는 “아시아인이 아시아를 정말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국적 없는 노마드란 생각을 버리고 한국과 동아시아 미술을 제대로 알고 싶다”고 말했다. 홍콩=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자신의 작품 ‘Thousand’ 앞에 선 이수경 작가는 “아시아인이 아시아를 정말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는 국적 없는 노마드란 생각을 버리고 한국과 동아시아 미술을 제대로 알고 싶다”고 말했다. 홍콩=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15∼18일 ‘아트 바젤 홍콩’이 펼쳐진 홍콩 컨벤션전시센터에선 온갖 미술품들이 관객의 발걸음을 붙잡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요란하고 시끌벅적한 작품들 사이에 고요한 울림으로 마음을 사로잡는 작품이 있다. 작가 이수경 씨(51)가 12각형 좌대에 도자 파편 1000개를 배열한 ‘Thousand’란 설치작품이다. 화랑들이 작품을 전시 판매하는 갤러리 부문과는 별도로 실험적 작품을 선보이는 ‘인카운터(Encounter)’전에 선보였다. 이는 미술관에선 볼 수 없는 대형 작업으로 꾸민 기획전으로, 도쿄 현대미술관 유코 하세가와 수석 큐레이터가 작가 17명을 선정했다.

이 씨는 이번 기획전에 한국 작가로는 유일하게 참여한 것을 “기쁘면서도 민낯으로 소개팅 나온 것 같다”고 말한다. 미술관에선 작업을 돋보이게 해주는 장치가 많은데 아트 페어에선 그야말로 작품의 ‘생얼’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

프리뷰 전날 밤늦도록 작품 설치에 매달렸던 그는 지친 기색을 내비치지 않고 차분히 말했다. “깨진 조각을 금박으로 붙인 ‘번역된 도자기’와 다른 작업이다. 따로 배열해보니 파편들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생겨나더라.” 사람의 몸이 우주의 먼지로 이뤄졌다는 기사를 읽은 뒤 우주와 지구의 전 생명체가 서로 연결돼 있음을 표현하고자 했다. 전통과 현대, 도자와 미술의 경계를 오가는 문화적 코드의 작업에서 인간의 근원과 보편적 문제를 성찰한 것이다.

도자기는 흙먼지에서 시작해 도공의 손이 닿고 불길을 거쳐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탄생한다. 먼지가 보기에 도자는 스트레스의 집적물이다. 힘들게 태어나도 깨지면 아무 쓸모가 없다. 그 조각들이 모여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는 풍경을 통해 작가는 들려준다. 우리는 먼지에서 출발했다는 것, 개인은 전체와 연결돼 있다는 것을.

홍콩=고미석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