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충분한 애도를 許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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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울지 못한 당신을 위하여/안 앙설렝 슈창베르제, 에블린 비손 죄프루아 지음/허봉금 옮김/184쪽·1만2800원·민음인

아내가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프로필 사진을 노란 리본으로 바꿨다. 세월호 침몰 사고 실종자들의 무사생환을 비는 간절함과 한 번 피어보지도 못한 채 차가운 바다 밑에 갇힌 생명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는 무력함과 안타까움을 그렇게라도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도 그럴진대 사랑하는 이를 잃고 오열하는, 이제는 쏟아낼 눈물조차 말라버린 사망자와 실종자 가족의 찢겨진 영혼에 새살이 돋으려면 또 얼마나 많은 한숨과 시간이 필요할까.

‘이별과 상실의 고통에서 벗어나 다시 살아가는 법’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의 저자들은 모두 젊은 나이에 가족과 사별한 상처를 지녔다. 슈창베르제는 사춘기가 한창인 17세 때 자신보다 네 살 어린 여동생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고, 죄프루아는 25세 때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은 생후 6개월 된 둘째 아이를 떠나보냈다. 아무 대비도 없는 상태에서 이해할 수도 없고, 불공평하며 가혹하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은 고통을 겪은 이들이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의 상담 사례와 의학, 심리학 등 관련 분야 연구 성과를 모아 쓴 책이다.

이 책은 소중한 존재를 잃은 사람들이 ‘눈물의 바다’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들이 혼자 숨어 울게끔, 마음속에 눈물을 간직한 채 살아가게끔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사회는 구성원들이 병과 늙음,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금기시하고 이들이 상실 이전 상태로 최대한 가깝게 돌아가도록 고통을 견디기를 바라는 속성이 있다. 이런 속성이 충분한 애도를 방해한다.

자아를 억제하고 슬픔의 표현을 자제하게끔 강요하는 사회적 강요를 따르면 필연적으로 정신적, 신체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인생의 본질이 결국 변화와 상실의 연속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오히려 슬픔을 표현하는 충분한 애도가 슬픔을 털고 일어나 다시 살아갈 힘과 평정, 내적 평화를 허락할 수도 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설익고 어설픈 위로의 말은 애도를 돕기보다 망치기 십상이다. “너는 잘 헤쳐 나갈 거야”,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정리되겠지”, “그 사람은 지상에서의 자신의 시간이 끝난 거야” 같은 말은 대표적 금기어다. 저자들은 이런 말들이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속에서 아직 살아있는 망자를 사회의 관습적 요구에 따라 지우려는 시도로 백해무익하다고 지적한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차라리 아무 말 없이 조용히 곁을 지켜 주는 게 더 효과적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애도가 필요한 이들이 모두 사랑하는 사람과 사별한 이들인 것은 아니다. 배우자와 별거나 결별, 감옥이나 정신병원에 수감되는 일도 가까운 가족의 사망에 버금가는 스트레스와 고통을 안겨 줄 수 있다. 실직은 물론 임신이나 출산, 이사 같은 변화도 사람에 따라 고통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변화나 상실로 인한 고통을 잊거나 느끼지 못하게 하려고 스스로를 지나치게 일에 몰아넣거나 정신적 공허감을 술이나 담배로 달래는 모습은 자신 앞에 닥친 변화를 ‘수용’하는 게 아니라 ‘저항’할 때 나타나는 증상이다. 이들의 곁을 지키는 이들이 새겨들을 대목이다.

이런 증상을 포착하고 완화시켜 주기 위해선 슬픔에 빠진 이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줄 수 있는 지속적 후원 네트워크를 구축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 이 책은 한 달에 한 번씩 고통받는 이들을 찾아와 시간을 보내줄 사람들의 목록을 그들 대신 우리가 작성해 줘야 한다고 조언한다. 꾸준하게 시간을 내야 하기 때문에 친척, 친구, 이웃, 동료들로 가능한 한 수십 명의 명단을 만들되 각자의 약속시간을 짧게 잡아 지속적 돌봄이 가능하도록 배려해야 한다. 용기를 불어넣어 주되 부탁 받지 않은 필요 이상의 일을 해주며 인정받기를 바라는 함정에 빠져선 안 된다는 충고도 절실하게 와 닿는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우리가 애도를 거부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심리로 살아남은 자로서 느끼는 자책과 죄책감을 꼽는다. 그리고 “진실은 우리가 당시 우리가 알고 있는 한에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라며 “상실이라는 현실에 의연히 대처하라”고 주문한다.

만약 저자들이 세월호 침몰 참사에 대해 알았더라도 “최선을 다했다”고 우리를 다독여 줬을까? 사랑하는 이들이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오고 대다수는 아직 생사조차 알지 못해 오열하는 이들 곁에 있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컴컴한 바다 밑에 갇혀 있는 이들을 한 사람이라도 더 구조하는 일, 참사를 예방하지 못한 무책임과 태만에 대해 철저히 묻고 따지는 일에서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과 죄책감을 남기지 않는 일 말이다.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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