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책선에 남북시인들의 시가 나란히 걸릴 때까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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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협회 DMZ 문학기행
120여명 참석 시낭송-땅굴탐사

김종철 한국시인협회장(왼쪽 서 있는 사람)이 시인들 앞에서 북녘 시인들에게 띄우는 시를 낭송하고 있다. 파주=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김종철 한국시인협회장(왼쪽 서 있는 사람)이 시인들 앞에서 북녘 시인들에게 띄우는 시를 낭송하고 있다. 파주=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이곳은 오래된 미래가 돋아날 세계의 내면/지금은 바람 불고 무장무장 비 내리지만/… (중략) 그대가 풀어놓은 장엄한 자유의 말들이/비무장 비무장 말발굽 소리를 내며/광활한 초록의 대지를 달리리니.”(박정대 시 ‘비무장 지대는 이끼도룡뇽의 북방한계선’ 중)

경기 파주시 문산읍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을 넘어 임진강을 건너면 비무장지대(DMZ) 직전에 만나게 되는 캠프 그리브스. 이곳에 주둔했던 미군의 이전으로 지금은 버려진 옛 기지터. DMZ 너머 적을 겨눈 ‘적의’가 장전돼 있던 이곳에서 시인들은 ‘비무장’을 노래하는 시를 낭송했다.

17일 한국시인협회 주최로 열린 DMZ 문학기행은 김종철 시인협회장과 신달자 김종해 정호승 박정대 정끝별 이건청 등 시인 120여 명이 모여 대립과 차이의 경계인 DMZ를 가로지를 상상력을 고민하는 자리였다.

시인들은 진도 여객선 침몰 사고 희생자를 위한 묵념으로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3월 시인협회장에 취임한 후 남북시인대회 개최 의사를 밝혔던 김 회장은 “DMZ 철책선에 남북 시인의 시가 걸릴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정끝별 시인은 이날 낭독한 ‘북녘 시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우리의 산맥과 강물이 하나로 이어져 있듯, 그리하여 하나의 바다와 들에서 만나듯, 서로의 어깨를 달려가고 싶습니다. 눈 감고 꽃을 보듯 서로를 바라보며 노래하고 싶습니다”라고 썼다.

참석자 중에는 원로 시인이 적지 않았지만 이들은 분단 현실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 안전모를 쓴 채 허리를 잔뜩 굽힌 자세로 땅굴을 탐사했다. 도라전망대에서는 개성시내의 윤곽밖에 허락하지 않는 흐린 날씨에 안타까워했다.

이건청 시인은 “휴전선이 무너지는 일은 먼 훗날일 수도 있지만 시인들은 상상력으로 이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협회는 이날 행사에 참석한 시인들로부터 DMZ를 소재로 한 시를 받아 9월 사화집을 낼 계획이다.

서울의 벚꽃은 이미 져버렸지만 DMZ엔 벚꽃이 만개해 있었다. 봄을 아직 떠나보내지 못한 DMZ에서 시인은 노래했다.

“이 산하에 타오르는/진달래를 두고 그대에게 안부 전하오니/남북 봄길 따라/우리의 마음도 열어보자.”(김종철 시인 ‘DMZ 미완성의 봄’ 중)

파주=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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